모히토 가서 헤밍웨이나 한 잔 하자고

He was an old man who fished alone in a skiff in the Gulf Stream and he had gone eighty-four days now without taking a fish. (멕시코 만류가 흐르는 바다에서 조그만 배를 타고 고기를 잡는 노인은 지난 84일 동안 단 한 마리도 잡지 못했다.)


20세기 미국 문학을 대표하는 작가로 스콧 피츠제럴드, 윌리엄 포크너, 그리고 어니스트 헤밍웨이를 꼽는다. 짧고 강렬한 문체인 하드보일드라는 스타일의 어니스트 헤밍웨이 작품들은 그의 치열한 삶과 더불어 많은 사람들을 매료시켰다. 인간의 패배를 인정하지 않았던 어니스트 헤밍웨이.

어니스트 헤밍웨이는 1899년 시카고의 유복한 가정에서 태어났고, 고등학교 때부터 글을 쓰기 시작했다. 1차 세계 대전에 참전하기 위해 대학을 가지 않고 군대를 지원, 하지만 시력이 나빠 입대가 좌절되어 미주리 주에 있는 신문사에 기자로 일을 시작했다. 신문사는 기자들에게 짧은 문장을 요구하고, 또 사건이 발생했을 때 그 사건만의 독자성을 찾으라고 강조했다. 기자로서 글쓰기 경험은, 밖으로 들어난 글은 조금이지만 그 안에 많은 것을 함축하고 있는 헤밍웨이의 빙산 이론에 밑바탕이 된다. 적극적 성격이었던 헤밍웨이는 직접 1차 대전을 경험하고 싶어, 9개월만에 신문사를 그만 두고 적십자사에 들어가, 이탈리아에서 구급차 운전수로 일을 했다. 그러나 폭파 현장에서 200개 파편이 다리에 박히는 중상을 입게 되고, 1차 세계 대전의 체험을 바탕으로 <무기여 잘 있거라> 를 1929년 집필했다. 전쟁이 끝난 후 다시 기자로 돌아가 유럽 특파원이 되어 파리에 가게 됐다. 파리에서 당대의 이름 있는 많은 예술가들 -스콧 피츠제럴드, 에즈라 파운드, 피카소 등- 과 교류하였다. 그리고 자전적 소설 <태양은 다시 떠오른다>로 25살 나이에 유명한 작가가 됐고, 1928년 키웨스트에 정착하여 여러 작품들을 썼다. 헤밍웨이가 닮고 싶어했던 아버지의 자살에 큰 충격을 먹고, 작품에도 슬픔들을 담아내기 시작했다. 경제적으로 여유가 생기면서 스페인, 아프리카 등을 여행하며 작품에 배경을 넓혀 나갔다. 스페인 내전이 발발하자 종군 기자로 일을 했고, <누구를 위하여 종을 울리나>를 쓰게 된다. 2차 세계 대전에도 종군 기자로 또 유럽에 가게 됐고, 노르망디 상륙 작전 현장도 직접 취재한다. 전쟁이 끝난 후 <노인과 바다>를 쓰고, 이 작품으로 1954년 노벨 문학상을 수상했다. 그러나 1차 대전 때 입었던 부상과 비행기 사고 후유증으로 고생하면서, 늙어 약해지는 자신에 대한 혐오를 키워 나갔다. 여러 차례 자살을 시도했고 우울증에 시달리다 1961년 자신의 엽총으로 생을 마감했다.

<키웨스트에 있는 헤밍웨이 생가>

극단적인 상황에서의 삶과 죽음, 운명에 맞선 인간의 승리와 패배라는 주제에 몰두하며 자신의 삶도 그러한 상황에 역동적으로 참여한 인간, 어니스트 헤밍웨이. 아침에는 글을 쓰고, 낮에는 낚시를, 저녁에는 바에서 술을 마시며 행복했었던 헤밍웨이의 삶이 있는 곳, 키웨스트.

플로리다 마이애미에서 남서쪽으로 약 130마일 떨어져 있는 미국의 최남단 지역. 오히려 쿠바 하바나가 더 가까운(106마일) 곳. 스페인어 ‘카요우에소(Cayo Hueso; 사람 뼈의 섬)’가 영어화 되면서 키웨스트로 변화되었다고 추정하는데, 미국 최고의 휴양지인키웨스트가 인골(人骨)이라니 뭔가 으시시하면서 아이러니하다. 그래서 더욱 매력적이라고 할 수 있는 곳. 마이애미에서 1번 도로 남쪽으로 42개의 다리를 건너 대서양과 멕시코만(아메리카만???)이 만나는 마지막 섬, 매년 백만명이 넘는 관광객이 찾는 아름다운 섬 키웨스트.

<1번 국도의 시작을 알리는 표지판>

헤밍웨이의 2번째 아내인 폴린의 부유한 삼촌이 그들 결혼 선물로 장만해 준 어니스트 헤밍웨이 하우스(907 Whitehead Street). 여기에서 헤밍웨이는 <누구를 위하여 종을 울리나>, <킬리만자로의 눈> 등을 썼고, 이혼 후에는 하바나에서 돌아올 때만 이 집에서 글을 썼다고 한다. 헤밍웨이는 고양이를 매우 좋아했다. 누군가가 다지증(polydactyl)을 갖고 있는 메인쿤 품종의 고양이를 선물했고, 헤밍웨이는 이 집에서 이 고양이를 키웠다. 지금은 이 고양이의 후손 60여마리와 헤밍웨이가 집필할 때 사용했던 타자기만이 이 집을 지키고 있다. 언제든 관광객의 접근이 금지된 헤밍웨이의 침대와 작업실에서 한가하게 낮잠을 즐기고 있는 다지증 고양이들을 볼 수 있을 것이다. 정원에 있는 수영장 북쪽 끝에는 헤밍웨이 부부 싸움의 흔적인 1센트 동전도 만날 수 있으니, 문학의 흥미를 떠나서라도 이 곳을 찾는 재미가 충분하다.

문학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키웨스트에는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의 작가 테네시 윌리엄스 하우스도 있다는 것을 기억하길 바란다. 이 곳은 헤밍웨이의 웅장한 저택과는 다르게 매우 소박한 곳이다. 헤밍웨이와 윌리엄스는 같은 시기에 키웨스트에 살았지만, 그들이 만난 것은 쿠바에서 단 한 번뿐이라고 한다.

어니스트 헤밍웨이의 단골 바였던 “슬로피 조스 바(Sloppy Joe’s Bar)”에 찾아가서 모히토 한 잔을 마셔 보는 것은 어떨까. 럼 베이스에 민트와 라임의 색과 향이 시원함을 주는 모히토. 헤밍웨이가 즐겨 마시던 칵테일이라고 한다. 헤밍웨이가 키웨스트에 있을 때 자주 찾던 이 곳에서 헤밍웨이가 좋아했던 모히토 한 잔은 헤밍웨이를 추억하기에도 라이브 음악에 흥을 내기에도 정말 좋을 것이다. 매년 7월에는 헤밍웨이의 삶을 기념하는 행사도, 헤밍웨이 닮은 꼴 콘테스트도 있으니 참고하시기를.

<헤밍웨이의 단골 술집, 슬로피 조스 바>

“But man is not made for defeat,” he said. “A man can be destroyed but not defeated.” (“그래도 사람은 패배하기 위해 창조된 게 아니다.” 그가 말했다. “인간은 파괴될 순 있지만 패배하지는 않는다.”)

미주중앙일보 [미국 어디까지 가봤니]에 등재된 칼럼입니다.

https://www.koreadaily.com/article/202506241322424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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