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5 – 더 브롱스, 이제는 감성이 넘치는 ‘조커 계단’이 있는 곳

뉴욕의 다섯 보로(Borough) 중에서 유일하게 이름 앞에 ‘The’를 붙이는 곳, 바로 The Bronx. 17세기, 이 땅을 처음 소유했던 스웨덴 출신의 농부 요나스 브롱크(Jonas Bronck)가 있었고, 사람들은 그의 땅을 가리켜 ‘The Bronck’s’라 불렀다. 그렇게 시작된 이름이 수 세기를 지나며, 하나의 고유명사로 정착된 것이다.

나에게 The Bronx는 단순한 지명이 아니라, 삶에 대한 태도로 이해된다. 이곳은 쿨한 척하지 않는다. 아픔을 숨기지 않고, 상처를 있는 그대로 껴안으며, 오히려 그 흉터마저도 삶의 일부로 자랑스럽게 드러내는 공간이다. 골목마다 벽화처럼 남겨진 힙합의 흔적들, 거리의 낙서들, 그리고 양키 스타디움에서 터져 나오는 환호성은 여전히 이 도시의 리듬처럼 숨 쉬고 있었다. The Bronx 그 이름에는 솔직함와 자부심, 그리고 거리에서 태어나 온몸으로 세상을 향해 울려 퍼진 고유한 박동이 담겨 있었다.

삶의 속도를 늦추는 장소, New York Botanical Garden

어느 화창한 아침, 나는 브롱스에 있는 뉴욕 식물원의 길을 걷고 있었다. 맨해튼에 센트럴 파크가 있다면, 브롱스에는 바로 이곳—뉴욕 식물원(New York Botanical Garden)이 있다. 단순한 공원이 아니라, 250에이커에 달하는 넓이 안에 전 세계의 식물과 계절이 고요히 숨 쉬고 있는, 살아 있는 자연의 박물관이다.

이곳의 상징은 단연 하웰 열대 식물 온실(Enid A. Haupt Conservatory)이다. 빅토리아 시대의 유리 건축 양식으로 지어진 이 온실은, 바깥의 계절과는 무관하게 언제나 다른 기후와 생태계가 공존하는 장소다. 아마존 정글의 짙은 습기와 향기, 바오밥 나무의 강렬한 존재감, 사막의 선인장 군락과 열대 연못 위에 떠 있는 거대한 왕연꽃까지—그 풍경은 마치 지구를 작게 축소해 온실 안에 펼쳐놓은 듯했다.

나는 특히 그 온실 뒤편의 나무 벤치를 좋아한다. 거기 앉아 있으면 사람들의 발걸음이 조용히 스쳐 지나가고,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멀리서 바람에 실려 온다. 각자의 방식으로 자연을 즐기며, 잠시 삶의 속도를 늦추는 이들이 만들어내는 풍경은 그 자체로 하나의 정원 같았다.

이탈리아의 향기를 담은 골목, 아서 애비뉴

식물원을 나와 아서 애비뉴(Arthur Avenue)로 향했다. 이곳은 브롱스에 자리한 ‘작은 리틀 이탈리아’로, 1910년대 이후 수많은 이탈리아 이민자들이 정착하며 건설한 골목이다. 이탈리아 전통의 정육점, 파스타 공방, 나폴리식 빵집, 제노바산 치즈 가게가 따로 또 같이 어깨를 맞대고 있었고, 마치 한 폭의 회화처럼 거리가 구성되어 있는 곳이다

한쪽 코너에 자리한 작은 델리 가게, 간이 테이블 두 개와 허름한 파라솔이 전부였지만, 그곳은 아서 애비뉴의 심장처럼 따뜻한 공간이었다. 나는 갓 구운 포카치아와 신선한 토마토 소스를 얹은 스파게티, 그리고 잔에 가득 따른 레드 와인을 주문했다. 빵은 아직 따뜻했고, 올리브유와 마늘 향이 진하게 퍼지며 입안 가득 고소한 풍미를 전했다.

그 순간, 문득 머릿속을 스쳐간 장면은 이탈리아 영화 〈시네마 천국〉이었다. 한적한 시골 마을의 광장에서, 작은 영화관 앞에 모여 앉아 와인을 나누고, 웃고, 눈물짓던 사람들. 인생이란 결국 이렇게 단순하고 아름다운 순간들로 채워진다는 걸, 스크린 밖에서도 느낄 수 있었던 그 영화처럼, 나 역시 이 조용한 거리의 한켠에서 삶의 맛을 천천히 음미하고 있었다. 아무 말 없이 포크를 든 채, 나는 오래된 유럽 어느 마을에 잠시 들른 것 같은 기분에 젖어 들었다. 브롱스 한복판에서 만난 이 작은 이탈리아, 그날의 햇살과 와인의 여운은 오랫동안 내 안에서 천천히, 깊게 퍼져갔다.

예술가들이 사랑했던 곳, 웨이브 힐

점심 식사를 마치고 나는 브롱스 북서쪽으로 향했다. 강가 언덕 위, 허드슨 강 너머 맨해튼 스카이라인이 멀리 보이는 Wave Hill. 이곳은 도시의 속도에서 벗어나게 해주는 숨 고르는 정원 같았다. 1843년에 지어진 시골 별장으로 시작해 지금은 28에이커에 이르는 넓은 공공 정원으로 탈바꿈했다. 언덕 위 Great Lawn에 펼쳐진 넓은 잔디밭과 Pergola Overlook에서 바라본 절벽과 단풍의 조화는 마치 동화의 한 장면 같았다. 그 벤치에 앉아 있으면, 도시에서 잊고 지낸 숨결이 천천히 나에게 돌아왔다.

이 정원이 역사적으로 의미 있는 장소로 기억되는 이유 또한 특별하다. 20세기 초반 마크 트웨인과 시어도어 루스벨트가 사랑한 공간이었으며, 1940년대에는 지휘자 토스카니니가 이곳에 머물렀다고 전해진다. 그들을 사로잡은 것은 아름다움만이 아니라, 자연과 예술이 만나는 순간의 영감이었다. 그리고 지금, 나는 그들과 같은 자리에서 그 감각을 함께하고 있었다. Glyndor House의 갤러리 벽에는 자연을 담은 작품들이 조용히 전시되어 있었고, Wave Hill House에서 흘러나오는 차 향과 음악은 정원의 풍경과 어우러져 나를 감싸주었다.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에서 학생들이 나지막이 시를 읊던 그 잔디밭의 풍경이 문득 떠올랐다. 모두가 서두르는 시대에, 웨이브 힐의 그 잔디밭은 속도를 늦추는 용기를 안겨주는 곳이었다. 나는 그 잔디 위에 조용히 앉아, 허드슨 강 저편의 흐림을 바라보았다. 바람이 스쳐갈 때마다 마음속의 먼지들도 함께 흩날렸고, 수선화와 덩굴장미 사이로 지나가는 햇살은 오늘 하루가 ‘살아 있었다’는 조용한 인사를 건네는 듯했다.

뉴요커의 함성이 울리는 곳, 양키 스타디움

브롱스에서 절대 빠질 수 없는 장소, 바로 양키 스타디움. 그 주말, 나는 가족과 함께 이 전설의 구장을 찾았다. 자연과 예술이 흐르던 웨이브 힐과는 전혀 다른 온도였다. 도시에 살아 있는 심장이 있다면, 바로 이곳이 아닐까 싶었다. 처음 양키라는 이름을 들었을 때, 어린 시절엔 그저 야구팀의 이름이라고만 생각했지만, 사실 그 단어엔 오래된 역사와 태도가 담겨 있다. 원래 “Yankee”는 17세기 네덜란드계 미국인을 조롱하던 말에서 시작됐고, 미국 독립전쟁 당시엔 영국이 식민지인을 낮춰 부르던 호칭이었다. 하지만 미국인들은 이 단어를 자신들의 것으로 받아들였고, 오늘날까지도 스스로의 정체성을 표현하는 자부심의 상징으로 쓰고 있다.

그래서일까. 양키 스타디움에 들어서는 순간, 단순한 스포츠 경기를 넘어서, 이곳이야말로 브롱스라는 도시가 가진 자신감, 거침없는 태도, 그리고 무엇보다 ‘살아있음’의 기운이 집약된 공간처럼 느껴졌다. 좌석에 앉아 맥주 한 잔을 들고 응원을 시작하자, 어디선가 울려 퍼지는 노래 한 곡이 경기장을 가득 채웠다.
Neil Diamond의 ‘Sweet Caroline‘이었다. 관중들은 가사에 맞춰 손뼉을 치고, 목청껏 따라 불렀다. 이 노래는 단지 야구 응원가가 아니었다. 삶이 아무리 거칠어도, 이 순간만큼은 함께 기뻐하고, 웃고, 노래할 수 있다는 것.


조피디의 추천 음악

사람들은 종종 The Bronx를 거칠고 시끄러운 이미지로 기억한다. 오죽하면 영화 <조커>의 그 유명한 계단 장면이 바로 이곳—웨스트 167번가와 앤더슨 애비뉴 사이, 수없이 오르내리는 60m짜리 계단에서 촬영되었겠는가. 원래는 이름조차 없던 그 평범한 계단이 이제는 ‘조커 계단’으로 불리며, 낯설고도 묘한 상징성을 얻었다. 그러나 그 계단에도, 우리의 삶처럼 어둠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고요히 내려다보이는 거리의 풍경, 오가는 사람들의 발자국 소리, 해 질 무렵의 주황빛 노을까지—그 모든 것이 모여 삶이라 불렸다. 아마 그래서일까. 이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 Frank Sinatra의 “That’s Life”가 사용된 것도.

“That’s life (that’s life) that’s life
And I can’t deny it
Many times I thought of cuttin’ out but my heart won’t buy it”

(그게 인생이지, 그리고 난 부정할 수 없어. 몇 번이나 그만두고 싶었지만, 내 마음은 그걸 받아들이지 않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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