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4 – 퀸즈, 세계의 목소리가 만나는 곳

퀸즈는 뉴욕의 다섯 개 심장 중 가장 넓고, 가장 다양한 언어로 하루를 시작하는 곳이다. 퀸즈에 있는 JFK와 LGA공항에서는 막 도착한 이방인의 트렁크 바퀴 소리가 바닥을 스치며 도시의 새로운 하루를 알리고, 플러싱의 시장 골목엔 중국의 시끌벅적한 말소리가 생선 위로 튀듯이 퍼진다. 잭슨 하이츠에서는 인도와 파키스탄의 향신료 향이 뜨거운 도로 위를 맴돌고, 아스토리아의 골목에서는 꿀을 얹은 그리스 요거트가 조용한 오전을 달콤하게 적신다. 자메이카 거리에서는 흑인 청년의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레게와 소울이 마치 대지처럼 느리게 진동하고 있다. 이 도시의 아침은 한 개의 언어도, 한 가지 리듬도 아니다. 각자의 방식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의 온기가 이른 햇살처럼 도시 전체를 부드럽게 데우고 있었다. 그러니까 퀸즈는 뉴욕이 아니라, 작은 지구 한 편이다. 나는 그 세계의 언저리를 천천히 걸었다.

햇살이 내려앉는 플러싱 메도우 코로나 파크

어느 날 아침 8시, 나는 Flushing Meadows Corona Park를 걷고 있었다. 뿌연 햇살이 천천히 나뭇잎 사이를 비집고 들어와 잔디 위로 흘렀고, 간간이 불어오는 바람이 운동복을 입은 사람들의 땀을 식혀주고 있었다. 맨해튼에 센트럴 파크가 있다면, 퀸즈에는 바로 이곳이 있었다. 단순한 휴식 공간을 넘어, US 오픈 테니스 경기장과 시티필드 야구장, 동물원, 미술관, 그리고 이어지는 산책로와 호수까지 모두 품은, 삶과 여유, 놀이와 사색이 동시에 숨 쉬는 도시의 심장이었다.

공원 중심부에 우뚝 선 유니스피어는 1964년 세계박람회를 기념해 세워진 강철 지구본이다. 물결처럼 퍼지는 분수 위로 세계의 대륙이 떠 있고, 그 곁을 지나며 지구본을 올려다보는 사람들의 눈빛은 신기하게도 서로 닮아 있었다. 국적도 언어도 달랐지만, 같은 공기를 마시고 같은 하늘을 올려다보는 그 순간만큼은 모두가 같은 방향을 바라보고 있었다.

벤치에 잠시 멈췄다가, 나는 자전거를 빌렸다. 메도우 레이크를 따라 시원한 바람을 온몸으로 맞으며 페달을 밟는 순간, 시간과 공간이 확장되는 듯한 쾌감이 몰려왔다. 물 위에 부딪힌 햇살이 찰랑거리는 호수를 따라 달리다 보면, 마음속 깊이 숨겨두었던 자유가 스르르 고개를 내밀었다. 마치 영화 <비긴 어게인>에서 환하게 미소 지으며 자전거를 타던 ‘그레타’처럼, 나 역시 이 평범한 아침 속에서 문득, 아주 소중한 해방감과 행복감을 느꼈다.

서로의 온기를 건네는 거리, 잭슨 하이츠

점심 무렵, 나는 잭슨 하이츠에 도착했다. 플러싱이 한인타운의 익숙함이라면, 이곳은 수십 개 국적이 엉켜 살아 숨 쉬는 다국적 생동감의 중심이었다. 골목마다 인도 커리 가게, 파키스탄 식당, 페루 타파스 바가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었고, 사람들의 말소리는 힌디어와 스페인어, 벵골어가 섞여 영어보다 더 자주 들려왔다. 언어조차 향신료처럼 풍부하게 섞여 있던 그곳에서 나는 낯섦이 아니라 묘한 친밀감을 느꼈다.

좁은 길 끝에 들어선 인도 음식점에 들어섰다. 벽에는 영화 포스터가 층층이 붙어 있었고, 고수와 사프란 향이 공기 중에 묵직하게 녹아 있었다. 야채 커리와 노릇한 난이 담긴 접시는 붉은색, 주황색, 연두색이 어우러진 팔레트 같았고, 첫 숟가락은 낯설었지만, 두 번째 숟가락에 이르러 나는 깨달았다. 이 음식은 수천 킬로미터를 넘어 이민자들의 손길과 이야기를 담아낸, 살아 있는 여정이라는 것을.

문득 창밖을 바라보게 되었다. 골목 위 철로를 지나던 7번 기차가 금속음을 쿵 울리며 지나갈 때마다 테이블이 살짝 흔들렸다. 그 아래, 낡은 수레 옆에 앉은 멕시코인 부부가 허름한 노점에 진열된 소품들을 하나하나 정리하고 있었다. 빛바랜 장난감, 낯선 브랜드의 싸구려 이어폰, 미키마우스 헤어핀들. 누가 이런 걸 살까, 싶었던 그 순간 — 한 중년 여성이 주머니에서 몇 달러를 꺼내 들고 다가갔다. 물건을 이리저리 들여다보지도 않고, 말없이 하나를 골라 조심스럽게 돈을 건넸다. 딱히 필요하지 않다는 걸 알면서도, 그냥 지나치지 않는 마음. 그 장면이 가슴을 건드렸다. 이민자로 살아간다는 건, 때때로 서로를 돕기 위해 불필요한 것을 필요로 해주는 마음이 아닐까. 말없이 서로의 고단함을 읽고, 그것을 모른 척하지 않는 눈빛. 그 작은 손길 하나에 담긴 연대와 존중이, 이 도시를 지탱하고 있는 또 하나의 방식이었다.

바쁜 도시 위에 내려앉은 꽃그늘, 루즈벨트 아일랜드

나는 맨해튼과 퀸즈 사이, 이스트강 한가운데 조용히 떠 있는 섬—루즈벨트 아일랜드로 향했다. 행정구역상으로는 맨해튼에 속하지만, 분위기는 퀸즈와 닮아 있는 섬이다. 공중 트램을 타고 유리창 너머를 바라보니, 맨해튼의 빌딩들이 노을빛에 천천히 스며들고 있었다. 트램이 강 위를 가로지를 때, 나는 세상의 속도에서 잠시 벗어난 듯한 해방감을 느꼈다.

섬에 내리자, 벚꽃이 흐드러지게 핀 강가가 펼쳐졌다. 하이힐을 벗고 운동화를 신은 여자가 조용히 웃고 있었고, 아이를 안은 아빠는 벚꽃잎을 손으로 받으며 바람을 쫓았다. 도시의 뒷모습 같았다. 말없이 자신을 풀어내는 사람들, 그리고 그들을 감싸는 부드러운 풍경. 이 벚꽃은 분홍보다 더 연하고, 향기보다 더 조용했다. 마치 곁에 있어주는 감정처럼.

이 섬은 한때 정신병원과 감옥, 병원이 있던 사회적 약자의 공간이었고, ‘웰페어 아일랜드’라 불리기도 했다. 그러다 1971년, 루즈벨트 대통령의 이름을 따 오늘의 이름을 갖게 되었고, 조용한 주거지로 탈바꿈했다. 나는 벚꽃길을 따라 걷다, 문득 영화 〈브리짓 존스의 일기〉의 마지막 장면이 떠올랐다. 하얀 눈 속 두 사람이 아무 말 없이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던 장면처럼, 이곳을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걷는다면, 말보다 마음이 먼저 닿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루즈벨트 아일랜드는 그런 마법을 품은 섬이었다.

화려함 너머의 고요함, 롱 아일랜드 시티

하루의 여운을 간직한 채, 나는 이스트리버 강변을 따라 내려오다 롱 아일랜드 시티에서 멈춰 설 수밖에 없었다. — 그곳에서도 가장 인상적인 장소, Pepsi Cola Sign 앞에 섰다. 네온빛으로 타오르듯 빛나는 붉은 간판 아래, 강물은 고요하게 흐르고 있었고, 그 건너편으로는 맨해튼의 빌딩들이 하나둘 불을 밝히며 야경의 절정을 이뤄가고 있었다. 그리고 그 중심, 유독 또렷하게 솟아오른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 그 모습은 마치, 뉴욕이 아니라 ‘미국’이라는 단어 그 자체로 내 앞에 서 있는 듯했다. 영화에서 늘 보던, 하지만 막상 현실로 마주했을 땐 더 벅차게 다가오는 장면. 나는 그 순간, 뉴욕이 아니라, 미국이라는 나라를 가장 선명하게 느꼈다.

하루가 도시의 호흡처럼 내 안을 지나가고 있었다. 아침엔 수십 개 언어로 문을 열고, 점심엔 이민자들의 향신료로 채우고, 오후엔 벚꽃 그늘 아래 마음을 식히고, 밤에는 이렇게 도시의 불빛으로 하루를 덮는—그게 퀸즈라는 도시의 하루였다.

조피디의 추천 음악

그 순간, 문득 음악 한 곡이 떠올랐다. 영화 〈City of Angels〉의 엔딩 장면에 흐르던 곡,

Sarah McLachlan – “Angel”.
“In the arms of the angel, fly away from here…”
(천사의 품에 안겨, 이곳에서 멀리 날아가요…)

도시의 불빛을 바라보며 듣는 이 노래는, 마치 이 밤이 주는 작은 위로 같았다. 화려하지만 고단하고, 분주하지만 외롭기도 한 삶 속에서, 우리는 모두 자기만의 방식으로 하루를 견디고 있는 것 같았다. 퀸즈의 마지막은 그렇게, 누군가의 하루를 조용히 안아주는 품 같은 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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