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Cho PD's Viewfinder
— 뉴욕편 —
Capturing the Essence of Life Beyond the Lens
Written by Sunwoong Cho
여행지의 풍경 너머, 그 안에 깃든 사람과
시간이 조용히 건네는 메시지를 담아냅니다.
Cho PD's Viewfinder
프롤로그
렌즈를 들기까지
나는 1975년, 한국에서 태어났다. 초등학교부터 대학교까지, 내 성장의 뿌리는 온전히 한국에 있었다. 한양대학교에서 신소재공학을 전공하며 엔지니어로서 첫걸음을 내디뎠고, 군 복무를 마친 뒤, 삼성전자 반도체 연구소 자동화 부서에서 IT기술의 최전선에 섰다. 이어 GM대우 IT본부에서 글로벌 GM과 협업하며 더 넓은 무대를 경험했다. 숫자와 도면, 데이터로 이루어진 세계였다. 분명한 답이 있고, 정해진 공식이 있는 삶이었다.
그리고 나는 미국행 결단을 내렸다. 단순한 이민이 아니라 ‘삶의 무대’ 자체를 미국으로 옮기는 일이었다. 이민 1세대로서 많은 도전과 직업을 거치며 미국 전역을 누볐다. 처음엔 막막했고, 자주 길을 잃었다. 그런데 그 낯선 길 위에서, 나는 뜻밖에도 내 안의 본질을 발견하게 되었다. 사람을 만나고, 이야기를 만들고, 그것을 기록하는 일. 엔지니어가 다뤄온 정답의 세계 바깥에, 답이 정해지지 않은 또 하나의 세계가 있었다.
미국에 처음 도착한 곳이 뉴욕이었다. 그리고 그곳에서 12년을 살았다. 그리고 지금은 캘리포니아 로스앤젤레스에서 살고 있다. 그 시간 동안 나는 여행을 사랑하게 되었고, 영화를 사랑하게 되었고, 음악을 사랑하게 되었다. 좋아하는 마음은 결국 무언가를 만들게 한다. 나는 유튜브 채널을 열어 여행과 인생의 기록을 영상으로 남기기 시작했고, 오래된 영화와 음악을 소개하는 일도 함께 해왔다. 사람들은 어느새 나를 ‘조피디’라 부르기 시작했다. 그 이름이 나는 좋았다. 거창한 직함이 아니라, 무언가를 꾸준히 기록하는 사람에게 자연스럽게 붙은 이름이었으니까.
Today, I work as a travel planner. The people I met on the road, the stories they shared, and the moments steeped in the city's alleyways—all of these have stacked up neatly inside me. This book is the very first collection of those accumulated records.
『조피디의 시선』은 여행지의 풍경을 안내하는 책이 아니다. 풍경 너머, 그 안에 깃든 사람과 시간이 조용히 건네는 메시지를 담아내려 했다. 카메라 렌즈를 들고 도시를 바라볼 때 내가 정말 담고 싶었던 것은 멋진 장면이 아니라, 그 장면이 품고 있는 인생의 본질이었다. 첫 번째 무대는 뉴욕이다. 내가 미국에서 처음 발 디딘 도시, 12년의 시간이 새겨진 도시. 이제 그 도시의 다섯 개 심장을 천천히 함께 걸어보려 한다.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조선웅 씀
– 목차 –
프롤로그 — 렌즈를 들기까지
01 뉴욕, 내가 영화의 한 장면이 된 순간
02 맨해튼, 첫눈에 반하게 되는 뉴욕의 얼굴
03 브루클린, 예술과 생존 사이
04 퀸즈, 세계의 목소리가 만나는 곳
05 더 브롱스, 이제는 감성이 넘치는 ‘조커 계단’이 있는 곳
06 스태튼 아일랜드, 가장 솔직한 뉴욕
에필로그 — 다시, 길 위에서
Chapter 01
뉴욕, 내가 영화의 한 장면이 된 순간
2006년 1월, 내 삶이 새로운 챕터로 넘어가는 소리를 나는 JFK 공항에서 처음 들었다. 회색빛 겨울 하늘 아래, 뉴욕은 오래된 흑백영화처럼 느껴졌다. 그리고 그 영화에 조용히 출연하게 된 나는, 낯선 도시 속으로 한 걸음 들어섰다.
처음 며칠은 퀸즈 플러싱의 한인 민박집에서 지냈다. 창밖엔 찬 바람이 불었고, 눈은 소리 없이 쌓여갔다. 낯설고도 낯익은 거리 너머를 바라보며 나는 마음속으로 되뇌었다. ‘그래, 나 정말 미국에 온 거구나.’
하지만 진짜 뉴욕은 그 며칠 뒤, 엘름허스트의 오래된 아파트에 작은 방 하나를 얻으면서부터 시작되었다. 낯선 언어, 낯선 냄새, 낯선 리듬 속에서 나는 나만의 둥지를 틀었다. 그리고 어느 날, 처음으로 지하철 개찰구를 통과해 플랫폼에 발을 내디뎠을 때 — 지하의 소음과 진동, 사람들 틈에 섞인 나를 느꼈을 때 — 비로소 ‘뉴욕에 산다’는 실감이 들었다. 그 순간부터 내 삶의 새로운 챕터가, 이 거대한 도시의 맥박과 함께 뛰기 시작했다.
지하철은 생각보다 거칠었다. 벽엔 낙서가 있었고, 바닥은 맨해튼의 반짝이는 이미지와는 거리가 멀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나는 그 속에서 진짜 뉴욕을 만났다.
누군가는 이어폰을 끼고 어깨를 흔들고 있었고, 누군가는 누더기 점퍼를 입은 채 소설책에 빠져 있었고, 누군가는 멋진 정장 차림에 커피 한 잔을 들고 출근길을 향하고 있었다.
아무도 나를 쳐다보지 않았다. 그건 무관심이 아니라 존중이었다. 여기선 각자만의 영화가 진행 중이었고, 나는 그 수많은 영화의 한 장면에 우연히 출연한 사람이 되어 있었다.
타임스퀘어, 뉴욕의 가장 밝은 얼굴

타임스퀘어는 단순한 ‘광장’이 아니라 하나의 무대로 느껴졌다. 24시간 꺼지지 않는 조명, 서로 다른 언어가 뒤섞인 목소리, 터지는 플래시, 춤추는 사람들과 사진을 찍는 관광객들.
타임스퀘어를 걷다 보면, 이 도시가 나에게 이렇게 속삭이는 것만 같다. “하고 싶은 게 있다면, 여기서 시작해봐.”
맨해튼은 무섭게 빠르지만, 타임스퀘어는 그 속에서 멈춰 서도 되는 몇 안 되는 장소다. 잠시 멈춰 고개를 들어보자. 사방에서 쏟아지는 빛과 사람과 소리 속에서, 나는 지금 세계의 한복판에 서 있다.
센트럴파크, 이 도시의 가장 깊은 속마음
타임스퀘어가 맨해튼의 얼굴이라면, 센트럴파크는 이 도시의 마음이다. 눈 쌓인 산책로를 따라 걷다 보면, 비둘기 떼가 푸드덕 날아오르고, 두 손을 꼭 잡고 걷던 노부부가 벤치에 앉아 조용히 커피를 나눈다. 입김을 내뿜으며 조깅하는 사람들 사이로 바이올린 선율이 흘러나오고, 그 틈으로 스며드는 겨울 햇살은 의외로 따뜻하다.
그중에서도 세상의 소음을 잠시 멈춰주는, 가장 조용하고 깊은 공간이 있다. 그 이름은 스트로베리 필즈(Strawberry Fields). 존 레논을 추모하기 위해 조성된 이 작은공간은, 센트럴파크 서쪽, 그가 생전에 머물렀던 다코타 빌딩(The Dakota) 바로 맞은편에 조용히 자리하고 있다.

검은 모자에 선글라스를 쓴 노신사가 작은 휴대용 스피커로 「Imagine」을 틀어놓고 조용히 앉아 있었다. 그 곁엔 누군가 놓고 간 꽃다발이 있었고, ‘Imagine’이라는 단어가 새겨진 원형 타일 앞에서는 어떤 이는 눈을 감고, 어떤 이는 나직이 노래를 따라 부르고, 젊은 연인들은 서로를 바라보며 조용히 미소 지었다.
그 풍경 속에서, 존 레논의 노랫말이 파문처럼 퍼졌다. “You may say I’m a dreamer, but I’m not the only one.”
조PD의 시선
뉴욕은 도시가 아니다. 하나의 무대이자, 한 권의 대본이며, 우리가 주인공이 될 수 있는 꿈의 세트장이다. 누군가는 조명을 받고 누군가는 그림자에 머물지만, 이 도시에선 그 누구도 배경이 아니다. 당신도, 당신 그대로의 모습으로 이 무대에 설 수 있다.
조PD의 추천 음악
뉴욕에서 이 곡을 들으면, 그저 이상적인 이상론이 아니라 정말 그렇게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만나게 된다. 모두가 다르지만, 함께 살아가는 도시. 그것이 바로 내가 처음 사랑하게 된 뉴욕이다.
John Lennon — 「Imagine」
“Imagine all the people / Living life in peace…”
(모든 사람이 평화 속에서 살아가는 모습을 상상해봐…)
Chapter 02
맨해튼, 첫눈에 반하게 되는 뉴욕의 얼굴
뉴욕은 도시 하나로는 설명되지 않는다. 마치 다섯 개의 심장이 동시에 뛰고 있는 거대한 생명체 같다. 맨해튼, 브루클린, 퀸즈, 더 브롱스, 그리고 스태튼 아일랜드. 사람들은 이 다섯 조각을 ‘5보로(Borough)’라 부른다.

그중에서도 맨해튼은 첫눈에 반하게 되는 얼굴이다. 누군가 처음 뉴욕을 만났을 때 마음속에 가장 선명하게 남는 장면. 반짝이는 빌딩 숲, 쉼 없이 흐르는 사람들의 물결, 타임스퀘어의 눈부신 조명 아래 터지는 숨결 같은 감정. 그 모든 첫 설렘은, 이 도시가 세상에 자신을 소개하는 표정인 맨해튼에서 시작된다.
맨해튼, 뉴욕의 얼굴
어느 날 아침, 맨해튼의 하늘은 안개에 희미하게 번져 있었다. 마치 잠에서 덜 깬 얼굴 같았다. 맨해튼을 향해 달려가는 7번 트레인의 창밖으로 스쳐 지나가는 빌딩들은, 누군가 대충 그려놓은 수묵화 같았다. 흐릿하고 불분명하지만, 그 속에 숨은 이야기가 궁금해지는 풍경이었다.
어쩌면 그래서일까. 맨해튼은 거주하는 곳이라기보다 꿈을 꾸러 찾아오는 곳이다. 여기서는 ‘어디서 왔느냐’보다 ‘어떤 이야기를 갖고 있느냐’가 더 중요하다. 그리고 그 이야기는 매일같이 타임스퀘어의 화려한 조명 아래, 브로드웨이 무대 위, 혹은 센트럴파크의 벤치 위에서 펼쳐진다. 망설임과 기대, 두려움과 희망이 뒤엉킨 그 복잡한 에너지 속에서 사람들은 저마다의 방식으로 살아내고 있었다. 결국 맨해튼은, 각자의 삶을 마음껏 펼칠 수 있는 ‘꿈꾸는 사람들’의 무대였다.
영화 같은 도시, 맨해튼
맨해튼의 거리를 걷다 보면, 문득 익숙한 영화 속 장면이 떠오른다. 「티파니에서 아침을」의 오드리 헵번이 커피와 빵을 손에 든 채 진주 목걸이를 하고 티파니 쇼윈도를 바라보던 장면. 그 순간의 정적과 반짝임은 지금도 5번가 어느 모퉁이에서 되살아나는 듯하다.
바로 그 거리, 5번가(5th Avenue). 고급 부티크와 고풍스러운 건축물이 줄지어 선 이곳을 걷다 보면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 속 앤 해서웨이가 커다란 잡지 더미를 들고 분주히 뛰던 장면이 겹쳐진다. 그녀의 발끝이 닿던 보도 위에서, 나는 또 다른 나의 장면을 찍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그리고 록펠러 센터 앞. 겨울이면 커다란 트리 아래에서 사랑을 속삭이던 「세렌디피티」의 연인들이 떠오른다. 스케이트장 위를 스치듯 지나가던 그들의 미소, 우연을 운명으로 만든 그 대화는 수많은 사람의 기억 속 뉴욕을 ‘로맨스’로 정의하게 만든다.

이 도시는 누군가의 첫사랑이었고, 또 누군가에겐 이별의 무대였다. 그러나 어떤 이야기든, 맨해튼이라는 배경 위에선 모두가 영화의 주인공이 된다.
뉴요커의 하루를 맛보다
맨해튼의 음식은 그저 한 끼의 식사가 아니다. 그것은 이민자의 시간이고, 예술가의 언어이며, 노동자의 땀이다. 다국적 도시의 식탁 위엔 전 세계의 사연이 올려져 있고, 그 사연을 씹고 넘기는 순간마다 나는 조금씩 이 도시와 가까워졌다.
<다운타운의 아침, 뉴욕이 베이글을 건넬 때>
소호(SoHo)의 아침은 출근길 뉴요커들로 숨 가쁘게 뛰고 있었다. 나는 줄을 서서 뉴욕식 베이글 하나를 주문했다. 크림치즈를 두껍게 바른, 쫀득한 베이글 한 입. 겉은 바삭하고 속은 부드러운 그 맛은 어쩌면 뉴욕 그 자체였다. 거칠고 바쁜 도시지만, 그 안에 숨겨진 따뜻함과 깊은 여운이 입안 가득 퍼졌다. 베이글 가게 주인은 “뉴욕 베이글은 그냥 빵이 아니야. 여기 들어간 건 도시의 역사와 사람들의 이야기지”라며 웃었다. 그 웃음 속에서 나는 이 도시가 가진 매력을 다시금 깨달았다.

<업타운, 지성의 골목에서 만난 따뜻한 점심>
컬럼비아 대학교 근처, 브로드웨이 112번가 모퉁이에 자리한 작은 식당. 낡은 벽돌 건물 사이에 숨어 있는 듯한 그곳은 학생들로 늘 북적였고, 그 틈에서 나는 조용히 구운 치킨 한 접시와 따뜻한 수프를 주문했다. 창가에 앉아 식사를 하며 바깥 풍경을 바라보던 그 순간, 지식의 향기와 젊음의 열기가 뒤섞인 공기가 참 근사했다. 할렘의 끝자락이자 어쩌면 맨해튼의 가장 지적인 구석, 이곳에서 나는 도시가 주는 새로운 영감을 맛보았다.

<미드타운의 중심, ‘큰집’의 김치찌개로 하루를 마무리>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이 보이는 미드타운 중심부 웨스트 32번가. 화려한 고층 빌딩들 사이로 작게, 그러나 당당하게 깃든 공간 바로 코리아타운. 그 속에서 나는 ‘큰집’이라는 이름의 식당에 들어섰다. 이름처럼 따뜻하고 푸근한 그곳에서, 나는 김치찌개를 시켰다. 보글보글 끓는 냄비에서 피어오른 김치 냄새는, 맨해튼이라는 거대한 도시 속에서 길을 잃은 이방인의 낯설고 외로운 마음결을 조용히 어루만져 주었다.

느리게 걷는 사람의 맨해튼
맨해튼은 빠르게 움직이는 도시다. 사람들은 쉴 새 없이 걷고, 뛰고, 움직인다. 하지만 나는 일부러 느리게 걸었다. 빠르게 지나치는 사람들 속에서 천천히 걷는 내 모습이 이상하게 보였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느리게 걷는 만큼 더 많이 보게 되었다. 한 걸음씩 천천히 옮기자, 보이지 않던 것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골목 사이로 비친 햇살의 따스함, 벽돌 하나에도 새겨진 작은 낙서의 의미, 바닥에 떨어진 낙엽 위로 밟고 지나간 사람들의 흔적.
결국 인생도 마찬가지라는 걸 깨달았다. 조금 천천히 걸으면 놓쳤던 풍경이 눈에 들어오기 마련이다. 인생이란, 그렇게 한 발짝씩 천천히 걸으며 발견하는 아름다운 순간들의 집합체가 아닐까.
조PD의 시선
맨해튼은 꿈꾸는 사람들에게 이렇게 속삭인다. 여기서 이뤄낸 꿈은 어디서든 이룰 수 있다고. 그래서 뉴욕의 얼굴, 맨해튼은 영원히 꿈꾸는 이들의 도시로 남는다.
조PD의 추천 음악
맨해튼을 걷다 보면 결국 이 한 곡으로 돌아오게 된다. 성공도 실패도 이곳에서는 모두 무대 위의 한 장면이 된다.
Frank Sinatra — 「New York, New York」
“If I can make it there, I’ll make it anywhere.”
(내가 그곳에서 성공한다면, 난 어디서든 성공할 수 있겠지.)
Chapter 03
브루클린, 예술과 생존 사이
브루클린은 지금, 뉴욕에서 가장 빠르게 뛰는 심장이다. 공장에서 갤러리가 된 공간, 세상 어디에도 없는 독특한 문화 공간, 그리고 거리마다 다른 언어의 음악이 흐르는 곳. 예술과 현실 사이, 멋과 생존 사이에서 아슬아슬하게 균형을 잡고 있는 도시. 여기서 나는, 맨해튼에서는 느낄 수 없었던 뉴욕의 또 다른 맥박을 마주했다.
영화 속 한 장면처럼, 덤보에서 시작된 하루
브루클린은 늘 어딘가 영화의 한 장면 속에 들어온 기분을 준다. 특히 덤보(DUMBO)에 서는 순간, 그 감정은 더욱 선명해진다. 날씨가 화창한 어느 날 아침, 나는 브루클린 브리지를 건너 덤보의 돌바닥 골목 위에 발을 디뎠다. 카메라 셔터 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려왔다. 누구나 이곳에 오면 그 익숙한 장면을 찍고 싶어 한다. 맨해튼 브리지를 배경으로 한, 빨간 벽돌 건물 사이의 좁은 길. 바로 영화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아메리카」에서 로버트 드니로가 걸어 나오던 그 길이다.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아메리카, 1984>
그 장면은 어쩌면 브루클린의 정서를 가장 함축적으로 담고 있다. 과거와 현재가 맞물리고, 고독과 낭만이 공존하는 곳. 정지된 듯하지만 언제나 움직이고 있는 도시의 숨결. 그 좁은 골목을 지나며 나는 문득, ‘이 골목은 도시의 기억을 품은 타임캡슐 같다’고 생각을 했다.
브루클린 브루어리, 쓴맛과 단맛 사이에서
정오가 가까워질 무렵, 나는 발걸음을 좁은 골목 안쪽으로 옮겼다. 브루클린 브루어리(Brooklyn Brewery)의 문을 열고 들어서는 순간, 묵직한 홉 향이 따뜻하게 나를 감쌌다. 그 향은 마치 이 도시의 기운 같았다. 날것이지만 정직하고, 강렬하지만 진심 어린.
브루클린은 한때 미국 최대의 맥주 생산지였다. 무려 마흔 곳이 넘는 양조장이 이 거리에 있었고, 미국에서 소비되는 맥주의 10퍼센트가 이곳에서 만들어졌다고 한다. 하지만 대기업과 광고의 파도에 밀려 그 역사는 사라지는 듯 보였다. 그러다 1988년, 기자 출신 스티브 힌디와 은행원 톰 포터가 사라진 맥주의 유산을 되살리겠다는 꿈으로 이 양조장을 열었다. 브루클린 브루어리는 그렇게, 도시의 맛과 기억을 다시 품기 시작했다.

대표 맥주인 브루클린 라거(Brooklyn Lager)를 한 잔 시켰다. 두툼한 유리잔 안에서 황금빛 거품이 천천히 올라왔다. 한 모금, 입안에 퍼지는 쌉쌀한 맛, 그리고 그 뒤를 따라오는 깊고 은은한 단맛.
삶이란 어쩌면 이런 맛일지도 모른다. 쓴맛을 지나야 비로소 단맛이 느껴지고, 그 두 가지가 섞여야 비로소 ‘풍미’가 된다. 브루클린의 맥주에는 그런 인생의 리듬이 담겨 있었다.
타임아웃 마켓, 낯선 감정이 머무는 공간
햇살이 길게 드리운 오후, 나는 다시 이스트강 강변을 따라 걸어 타임아웃 마켓 뉴욕(Time Out Market New York)으로 향했다. 그 안에서는 도시의 낯선 감정들이 실험되고 있었다. 푸드홀의 오픈 키친에선 셰프들이 예술처럼 요리를 지었고, 2층 루프탑에서는 신인 밴드가 자작곡을 연주했다. 낯설지만 어딘가 익숙한 그 멜로디에, 사람들은 고개를 천천히 흔들며 박자를 맞췄다.

루프탑에 올라서자, 눈앞에 펼쳐진 풍경이 숨을 멎게 했다. 브루클린 브리지, 맨해튼 브리지, 그리고 멀리 윌리엄스버그 브리지까지 — 세 개의 다리가 서로를 향해 팔을 뻗은 듯, 하늘 아래 거대한 악보 위에 멜로디처럼 얹혀 있었다. 그 장면은 마치 도시가 나를 위해 조용히 연주하는 삼중주 같았다. 고요하지만 웅장하고, 무겁지만 따뜻한 울림.
타임아웃 마켓은 그렇게, 도시의 새로운 감정들이 숨 쉬는 실험실이자 브루클린이라는 이름이 품은 가장 생생한 현장이었다.
브루클린 브리지 파크, 불빛이 마음을 물들일 때
그날 밤, 나는 브루클린 브리지 파크의 벤치에 앉아 있었다. 말없이, 아주 천천히 숨을 쉬었다. 세상이 고요해지는 시간. 도시의 소음마저 스르르 수면 아래로 가라앉던 그 찰나, 맨해튼의 불빛은 강물 위로 길게 번졌다. 마치 어젯밤의 꿈이 물 위에 떠오르듯, 반짝이는 기억들이 잔잔한 파도처럼 마음을 스쳤다. 빛은 멈춰 있었고, 시간은 흐르는 듯 흐르지 않았다.
그 순간, 나는 문득 스크린 너머로 빨려 들어갔다. 이 모든 장면이 익숙했다. 어디선가 분명 본 적이 있었다. 아, 그래. 「섹스 앤 더 시티」의 마지막 장면, 브루클린 브리지 위에서 캐리 브래드쇼가 그 모든 관계의 복잡함과 사랑의 가능성을 받아들이던 그 순간. 나는 지금, 바로 그 장면 속에 들어와 있었다.

그때, 내 앞 벤치에 한 노부부가 앉았다. 아무 말도 없이 손을 맞잡은 채, 눈빛으로 서로의 오늘을 건넸다. 그 장면은 그 어떤 대사보다 깊은 울림을 남겼다.
사랑은, 아마도 그런 것이다. 멀리서 보면 별것 아닌 한 장면, 하지만 가까이에서 보면 수십 년의 계절이 스며든 풍경. 브루클린의 밤은 조용히 속삭인다. “말하지 않아도 괜찮아요. 여기선 마음이 먼저 전해지니까요.”
조PD의 시선
브루클린은 말하자면 ‘덜 다듬어진 아름다움’의 다른 이름이다. 반듯하진 않지만, 그래서 더 진짜 같다. 이곳 사람들은 멋지게 살려고 애쓰지 않는다. 그저 자기답게 살기를 바랄 뿐이다. 실험하고, 실패하고, 다시 도전하며 살아가는 사람들. 그 속에서 나는 삶도 그렇게 살아가야 한다는 걸 배웠다. 정답보다 태도, 완벽함보다 온기 — 그것이 브루클린의 방식이다.
조PD의 추천 음악
브루클린은 어쩌면 우리가 언젠가 꼭 가야 할 곳이 아니라, ‘지금 바로 걸어봐야 할 감정’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감정을 안고 나는 오늘도 천천히, 내 방식대로 걷는다.
Norah Jones — 「Don’t Know Why」
“I waited ’til I saw the sun, I don’t know why I didn’t come.”
(해가 뜰 때까지 기다렸지만, 왜 가지 않았는지는 나도 모르겠어요.)
Chapter 04
퀸즈, 세계의 목소리가 만나는 곳
퀸즈는 뉴욕의 다섯 개 심장 중 가장 넓고, 가장 다양한 언어로 하루를 시작하는 곳이다. JFK와 라과디아 공항에서는 막 도착한 이방인의 트렁크 바퀴 소리가 바닥을 스치며 도시의 새로운 하루를 알리고, 플러싱의 시장 골목엔 중국어의 시끌벅적한 말소리가 생선 위로 튀듯 퍼진다.
잭슨하이츠에서는 인도와 파키스탄의 향신료 향이 뜨거운 도로 위를 맴돌고, 아스토리아의 골목에서는 꿀을 얹은 그리스 요거트가 조용한 오전을 달콤하게 적신다. 자메이카 거리에서는 흑인 청년의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레게와 소울이 마치 대지처럼 느리게 진동한다. 이 도시의 아침은 한 개의 언어도, 한 가지 리듬도 아니다. 각자의 방식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의 온기가 이른 햇살처럼 도시 전체를 부드럽게 데우고 있었다. 그러니까 퀸즈는 뉴욕이 아니라, 작은 지구 한 편이다. 나는 그 세계의 언저리를 천천히 걸었다.
햇살이 내려앉는 플러싱 메도우 코로나 파크
어느 날 아침 8시, 나는 플러싱 메도우 코로나 파크를 걷고 있었다. 뿌연 햇살이 천천히 나뭇잎 사이를 비집고 들어와 잔디 위로 흘렀고, 간간이 불어오는 바람이 운동복을 입은 사람들의 땀을 식혀주고 있었다. 맨해튼에 센트럴파크가 있다면, 퀸즈에는 바로 이곳이 있었다. 단순한 휴식 공간을 넘어 US 오픈 테니스 경기장과 시티 필드 야구장, 동물원, 미술관, 그리고 산책로와 호수까지 모두 품은 — 삶과 여유, 놀이와 사색이 동시에 숨 쉬는 도시의 심장이었다.

공원 중심부에 우뚝 선 유니스피어는 1964년 세계박람회를 기념해 세워진 강철 지구본이다. 물결처럼 퍼지는 분수 위로 세계의 대륙이 떠 있고, 그 곁을 지나며 지구본을 올려다보는 사람들의 눈빛은 신기하게도 서로 닮아 있었다. 국적도 언어도 달랐지만, 같은 공기를 마시고 같은 하늘을 올려다보는 그 순간만큼은 모두가 같은 방향을 바라보고 있었다.
벤치에 잠시 멈췄다가, 나는 자전거를 빌렸다. 메도우 호수를 따라 시원한 바람을 온몸으로 맞으며 페달을 밟는 순간, 시간과 공간이 확장되는 듯한 쾌감이 몰려왔다. 물 위에 부딪힌 햇살이 찰랑거리는 호수를 따라 달리다 보면, 마음속 깊이 숨겨두었던 자유가 스르르 고개를 내밀었다. 마치 영화 「비긴 어게인」에서 환하게 미소 지으며 자전거를 타던 그레타처럼, 나 역시 이 평범한 아침 속에서 문득 아주 소중한 해방감과 행복감을 느꼈다.
서로의 온기를 건네는 거리, 잭슨하이츠
점심 무렵, 나는 잭슨하이츠에 도착했다. 플러싱이 한인타운의 익숙함이라면, 이곳은 수십 개 국적이 엉켜 살아 숨 쉬는 다국적 생동감의 중심이었다. 골목마다 인도 커리 가게, 파키스탄 식당, 페루 타파스 바가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었고, 사람들의 말소리는 힌디어와 스페인어, 벵골어가 섞여 영어보다 더 자주 들려왔다. 언어조차 향신료처럼 풍부하게 섞여 있던 그곳에서, 나는 낯섦이 아니라 묘한 친밀감을 느꼈다.

좁은 길 끝의 인도 음식점에 들어섰다. 벽에는 영화 포스터가 층층이 붙어 있었고, 고수와 사프란 향이 공기 중에 묵직하게 녹아 있었다. 채소 커리와 노릇한 난이 담긴 접시는 붉은색, 주황색, 연두색이 어우러진 팔레트 같았다. 첫 숟가락은 낯설었지만, 두 번째 숟가락에 이르러 나는 깨달았다. 이 음식은 수천 킬로미터를 넘어 이민자들의 손길과 이야기를 담아낸, 살아 있는 여정이라는 것을.
문득 창밖을 바라보게 되었다. 골목 위 철로를 지나던 7번 기차가 금속음을 쿵 울리며 지나갈 때마다 테이블이 살짝 흔들렸다. 그 아래, 낡은 수레 옆에 앉은 멕시코인 부부가 허름한 노점에 진열된 소품들을 하나하나 정리하고 있었다. 빛바랜 장난감, 낯선 브랜드의 싸구려 이어폰, 미키마우스 머리핀들. ‘누가 이런 걸 살까’ 싶던 그 순간 — 한 중년 여성이 주머니에서 몇 달러를 꺼내 들고 다가갔다. 물건을 이리저리 들여다보지도 않고, 말없이 하나를 골라 조심스럽게 돈을 건넸다. 딱히 필요하지 않다는 걸 알면서도, 그냥 지나치지 않는 마음.
그 장면이 가슴을 건드렸다. 이민자로 살아간다는 건, 때때로 서로를 돕기 위해 불필요한 것을 필요로 해주는 마음이 아닐까. 말없이 서로의 고단함을 읽고, 그것을 모른 척하지 않는 눈빛. 그 작은 손길 하나에 담긴 연대와 존중이, 이 도시를 지탱하는 또 하나의 방식이었다.
바쁜 도시 위에 내려앉은 꽃그늘, 루스벨트 아일랜드

나는 맨해튼과 퀸즈 사이, 이스트강 한가운데 조용히 떠 있는 섬 — 루스벨트 아일랜드로 향했다. 행정구역상으로는 맨해튼에 속하지만, 분위기는 퀸즈와 닮아 있는 섬이다. 공중 트램을 타고 유리창 너머를 바라보니, 맨해튼의 빌딩들이 노을빛에 천천히 스며들고 있었다. 트램이 강 위를 가로지를 때, 나는 세상의 속도에서 잠시 벗어난 듯한 해방감을 느꼈다.
섬에 내리자, 벚꽃이 흐드러지게 핀 강가가 펼쳐졌다. 하이힐을 벗고 운동화를 신은 여자가 조용히 웃고 있었고, 아이를 안은 아빠는 벚꽃잎을 손으로 받으며 바람을 쫓았다. 도시의 뒷모습 같았다. 말없이 자신을 풀어내는 사람들, 그리고 그들을 감싸는 부드러운 풍경. 이 벚꽃은 분홍보다 더 연하고, 향기보다 더 조용했다. 마치 곁에 있어주는 감정처럼.

이 섬은 한때 정신병원과 감옥, 병원이 있던 사회적 약자의 공간이었고, ‘웰페어 아일랜드’라 불리기도 했다. 그러다 1973년, 프랭클린 D. 루스벨트 대통령의 이름을 따 오늘의 이름을 갖게 되었고, 조용한 주거지로 탈바꿈했다. 나는 벚꽃길을 따라 걷다 문득 영화 「브리짓 존스의 일기」의 마지막 장면을 떠올렸다. 하얀 눈 속 두 사람이 아무 말 없이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던 장면처럼, 이곳을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걷는다면 말보다 마음이 먼저 닿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루스벨트 아일랜드는 그런 마법을 품은 섬이었다.
화려함 너머의 고요함, 롱아일랜드시티
하루의 여운을 간직한 채, 나는 이스트 강변을 따라 내려오다 롱아일랜드시티에서 멈춰 설 수밖에 없었다. 그곳에서도 가장 인상적인 장소, 펩시콜라 사인(Pepsi-Cola Sign) 앞에 섰다.

네온빛으로 타오르듯 빛나는 붉은 간판 아래, 강물은 고요하게 흐르고 있었고, 그 건너편으로는 맨해튼의 빌딩들이 하나둘 불을 밝히며 야경의 절정을 이뤄가고 있었다. 그리고 그 중심, 유독 또렷하게 솟아오른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 그 모습은 마치 뉴욕이 아니라 ‘미국’이라는 단어 그 자체로 내 앞에 서 있는 듯했다.
영화에서 늘 보던, 하지만 막상 현실로 마주했을 땐 더 벅차게 다가오는 장면. 나는 그 순간, 뉴욕이 아니라 미국이라는 나라를 가장 선명하게 느꼈다.
하루가 도시의 호흡처럼 내 안을 지나가고 있었다. 아침엔 수십 개 언어로 문을 열고, 점심엔 이민자들의 향신료로 채우고, 오후엔 벚꽃 그늘 아래 마음을 식히고, 밤에는 이렇게 도시의 불빛으로 하루를 덮는 — 그것이 퀸즈라는 도시의 하루였다.
조PD의 시선
화려하지만 고단하고, 분주하지만 외롭기도 한 삶 속에서, 우리는 모두 자기만의 방식으로 하루를 견디고 있다. 퀸즈의 마지막은 그렇게, 누군가의 하루를 조용히 안아주는 품 같은 밤이었다.
조PD의 추천 음악
도시의 불빛을 바라보며 듣는 이 노래는, 마치 이 밤이 건네는 작은 위로 같았다. 영화 「시티 오브 엔젤」의 엔딩에 흐르던 그 곡이 문득 떠올랐다.
Sarah McLachlan — 「Angel」
“In the arms of the angel, fly away from here…”
(천사의 품에 안겨, 이곳에서 멀리 날아가요…)
Chapter 05
더 브롱스, 이제는 감성이 넘치는 ‘조커 계단’이 있는 곳
뉴욕의 다섯 보로(Borough) 중 유일하게 이름 앞에 ‘The’를 붙이는 곳, 바로 더 브롱스(The Bronx). 17세기, 이 땅을 처음 소유했던 스웨덴 출신의 농부 요나스 브롱크(Jonas Bronck)가 있었고, 사람들은 그의 땅을 가리켜 ‘The Bronck’s’라 불렀다. 그렇게 시작된 이름이 수 세기를 지나며 하나의 고유명사로 정착했다.
나에게 더 브롱스는 단순한 지명이 아니라 삶에 대한 태도로 이해된다. 이곳은 쿨한 척하지 않는다. 아픔을 숨기지 않고, 상처를 있는 그대로 껴안으며, 오히려 그 흉터마저 삶의 일부로 자랑스럽게 드러내는 공간이다. 골목마다 벽화처럼 남겨진 힙합(Hip-Hop)의 흔적들, 거리의 낙서들, 그리고 양키 스타디움에서 터져 나오는 환호성은 여전히 이 도시의 리듬처럼 숨 쉬고 있었다. 그 이름에는 솔직함과 자부심, 그리고 거리에서 태어나 온몸으로 세상을 향해 울려 퍼진 고유한 박동이 담겨 있었다.
삶의 속도를 늦추는 장소, 뉴욕 식물원
어느 화창한 아침, 나는 더 브롱스에 있는 뉴욕 식물원의 길을 걷고 있었다. 맨해튼에 센트럴파크가 있다면, 더 브롱스에는 바로 이곳 — 뉴욕 식물원(New York Botanical Garden)이 있다. 단순한 공원이 아니라, 250에이커에 달하는 넓이 안에 전 세계의 식물과 계절이 고요히 숨 쉬고 있는, 살아 있는 자연의 박물관이다.

이곳의 상징은 단연 이니드 온실(Enid A. Haupt Conservatory)이다. 빅토리아 시대의 유리 건축 양식으로 지어진 이 온실은, 바깥의 계절과는 무관하게 언제나 다른 기후와 생태계가 공존하는 장소다. 아마존 정글의 짙은 습기와 향기, 바오바브나무의 강렬한 존재감, 사막의 선인장 군락과 열대 연못 위에 떠 있는 거대한 왕연꽃까지 — 그 풍경은 마치 지구를 작게 축소해 온실 안에 펼쳐놓은 듯했다.
나는 특히 그 온실 뒤편의 나무 벤치를 좋아한다. 거기 앉아 있으면 사람들의 발걸음이 조용히 스쳐 지나가고,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멀리서 바람에 실려 온다. 각자의 방식으로 자연을 즐기며 잠시 삶의 속도를 늦추는 이들이 만들어내는 풍경은, 그 자체로 하나의 정원 같았다.
이탈리아의 향기를 담은 골목, 아서 애비뉴
식물원을 나와 아서 애비뉴(Arthur Avenue)로 향했다. 이곳은 더 브롱스에 자리한 ‘작은 리틀 이탈리아’로, 1910년대 이후 수많은 이탈리아 이민자가 정착하며 만들어낸 골목이다. 이탈리아 전통의 정육점, 파스타 공방, 나폴리식 빵집, 제노바산 치즈 가게가 따로 또 같이 어깨를 맞대고 있었고, 마치 한 폭의 회화처럼 거리가 구성되어 있었다.

한쪽 코너에 자리한 작은 델리 가게. 간이 테이블 두 개와 허름한 파라솔이 전부였지만, 그곳은 아서 애비뉴의 심장처럼 따뜻한 공간이었다. 나는 갓 구운 포카치아와 신선한 토마토소스를 얹은 스파게티, 그리고 잔에 가득 따른 레드 와인을 주문했다. 빵은 아직 따뜻했고, 올리브유와 마늘 향이 진하게 퍼지며 입안 가득 고소한 풍미를 전했다.
그 순간, 문득 머릿속을 스쳐 간 장면은 이탈리아 영화 「시네마 천국」이었다. 한적한 시골 마을의 광장에서, 작은 영화관 앞에 모여 앉아 와인을 나누고, 웃고, 눈물짓던 사람들. 인생이란 결국 이렇게 단순하고 아름다운 순간들로 채워진다는 걸 스크린 밖에서도 느낄 수 있었던 그 영화처럼, 나 역시 이 조용한 거리의 한편에서 삶의 맛을 천천히 음미하고 있었다. 아무 말 없이 포크를 든 채, 나는 오래된 유럽 어느 마을에 잠시 들른 것 같은 기분에 젖어 들었다. 더 브롱스 한복판에서 만난 이 작은 이탈리아, 그날의 햇살과 와인의 여운은 오랫동안 내 안에서 천천히, 깊게 퍼져갔다.
예술가들이 사랑했던 곳, 웨이브 힐
점심 식사를 마치고 나는 더 브롱스 북서쪽으로 향했다. 강가 언덕 위, 허드슨강 너머 맨해튼 스카이라인이 멀리 보이는 웨이브 힐(Wave Hill). 이곳은 도시의 속도에서 벗어나게 해주는, 숨 고르는 정원 같았다. 1843년에 지어진 시골 별장으로 시작해 지금은 28에이커에 이르는 넓은 공공 정원으로 탈바꿈했다. 언덕 위 그레이트 론(Great Lawn)에 펼쳐진 넓은 잔디밭과 퍼골라 전망대(Pergola Overlook)에서 바라본 절벽과 단풍의 조화는 마치 동화의 한 장면 같았다. 그 벤치에 앉아 있으면, 도시에서 잊고 지낸 숨결이 천천히 나에게 돌아왔다.

이 정원이 역사적으로 의미 있는 장소로 기억되는 이유 또한 특별하다. 20세기 초반 마크 트웨인과 시어도어 루스벨트가 사랑한 공간이었으며, 1940년대에는 지휘자 토스카니니가 이곳에 머물렀다고 전해진다. 그들을 사로잡은 것은 아름다움만이 아니라, 자연과 예술이 만나는 순간의 영감이었다. 그리고 지금, 나는 그들과 같은 자리에서 그 감각을 함께하고 있었다. 글린도어 하우스(Glyndor House)의 갤러리 벽에는 자연을 담은 작품들이 조용히 전시되어 있었고, 웨이브 힐 하우스(Wave Hill House)에서 흘러나오는 차 향과 음악은 정원의 풍경과 어우러져 나를 감싸주었다.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에서 학생들이 나지막이 시를 읊던 그 잔디밭의 풍경이 문득 떠올랐다. 모두가 서두르는 시대에, 웨이브 힐의 그 잔디밭은 속도를 늦추는 용기를 안겨주는 곳이었다. 나는 그 잔디 위에 조용히 앉아, 허드슨강 저편의 흐릿한 풍경을 바라보았다. 바람이 스쳐 갈 때마다 마음속 먼지들도 함께 흩날렸고, 수선화와 덩굴장미 사이로 지나가는 햇살은 오늘 하루가 ‘살아 있었다’는 조용한 인사를 건네는 듯했다.
뉴요커의 함성이 울리는 곳, 양키 스타디움
더 브롱스에서 절대 빠질 수 없는 장소, 바로 양키 스타디움. 그 주말, 나는 이 전설의 구장을 찾았다. 자연과 예술이 흐르던 웨이브 힐과는 전혀 다른 온도였다. 도시에 살아 있는 심장이 있다면, 바로 이곳이 아닐까 싶었다.
처음 ‘양키’라는 이름을 들었을 때, 어린 시절엔 그저 야구팀의 이름이라고만 생각했다. 하지만 사실 그 단어엔 오래된 역사와 태도가 담겨 있다. 원래 ‘양키(Yankee)’는 17세기 네덜란드계 미국인을 조롱하던 말에서 시작됐고, 미국 독립전쟁 당시엔 영국이 식민지인을 낮춰 부르던 호칭이었다. 하지만 미국인들은 이 단어를 자신들의 것으로 받아들였고, 오늘날까지도 스스로의 정체성을 표현하는 자부심의 상징으로 쓰고 있다.

그래서일까. 양키 스타디움에 들어서는 순간, 단순한 스포츠 경기를 넘어 이곳이야말로 더 브롱스라는 도시가 가진 자신감, 거침없는 태도, 그리고 무엇보다 ‘살아 있음’의 기운이 집약된 공간처럼 느껴졌다. 좌석에 앉아 맥주 한 잔을 들고 응원을 시작하자, 어디선가 울려 퍼지는 노래 한 곡이 경기장을 가득 채웠다. 닐 다이아몬드의 「Sweet Caroline」이었다. 관중들은 가사에 맞춰 손뼉을 치고, 목청껏 따라 불렀다. 이 노래는 단지 야구 응원가가 아니었다. 삶이 아무리 거칠어도, 이 순간만큼은 함께 기뻐하고, 웃고, 노래할 수 있다는 것. 그 단순한 진실이 경기장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조PD의 시선
사람들은 종종 더 브롱스를 거칠고 시끄러운 이미지로 기억한다. 영화 「조커」의 그 유명한 계단 장면이 바로 이곳, 웨스트 167번가와 앤더슨 애비뉴 사이, 사람들이 수없이 오르내리는 60미터 계단에서 촬영되었으니 말이다. 원래는 이름조차 없던 그 평범한 계단이 이제는 ‘조커 계단’으로 불리며 낯설고도 묘한 상징성을 얻었다. 그러나 그 계단에도, 우리의 삶처럼 어둠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고요히 내려다보이는 거리의 풍경, 오가는 사람들의 발자국 소리, 해 질 무렵의 주황빛 노을까지 — 그 모든 것이 모여 삶이라 불렸다.

조PD의 추천 음악
아마 그래서일까. 영화 「조커」의 마지막 장면에 이 곡이 사용된 것도. 거칠고 고단한 하루 끝에서도, 끝내 삶을 놓지 못하는 마음에 대한 노래다.
Frank Sinatra — 「That’s Life」
“That’s life, that’s life / And I can’t deny it / Many times I thought of cuttin’ out but my heart won’t buy it.”
(그게 인생이지, 그리고 난 부정할 수 없어. 몇 번이나 그만두고 싶었지만, 내 마음은 그걸 받아들이지 않아.)
Chapter 06
스태튼 아일랜드, 가장 솔직한 뉴욕
“뉴욕에 살지만 뉴욕을 원하지 않을 때 가는 곳.” 그 말처럼, 스태튼 아일랜드는 언제나 도시의 바쁜 숨결에서 한 발짝 물러난 채 고요한 그림자 속에 자리하고 있었다. 고즈넉한 나무 길이 이어지고, 간간이 드러나는 해안도로는 바람처럼 조용히 흐르며, 삶의 여유가 잔잔하게 스며든다.
이곳은 관광객의 발길보다 현지인의 시간이 더 천천히 머무는 공간이다. 빠르게 돌아가는 뉴욕의 시계에서 잠시 멈추고 싶을 때, 도시가 조용히 숨을 고르며 나를 품어주는 곳 — 그것이 바로 스태튼 아일랜드다.
고요한 바다를 느낄 수 있는 곳, 사우스 비치
스태튼 아일랜드에 도착한 아침, 가장 먼저 향한 곳은 사우스 비치였다. 아직 햇살이 수평선 위로 천천히 올라오고 있었고, 바다는 잔잔한 숨을 고르듯 고요했다. 모래사장을 걷는 사람들의 발걸음은 가벼웠고, 데크 위를 스치는 바람엔 갓 씻은 하늘 냄새가 배어 있었다. 도시의 아침이라기보단, 작은 해안 마을의 여유로움이 느껴지는 풍경이었다.
그 아침 풍경의 한가운데, 베라자노 브리지(Verrazzano-Narrows Bridge)는 조용히 위용을 드러내고 있었다. 브루클린과 스태튼 아일랜드를 잇는 이 거대한 현수교는 마치 하늘과 바다를 연결하는 긴 숨결처럼 서 있었다. 다리의 이름은 16세기 이탈리아 탐험가 조반니 다 베라차노에서 비롯되었는데, 그는 이 해협을 처음 탐험한 유럽인이었다고 한다. 1964년 완공 당시엔 세계에서 가장 긴 현수교였고, 지금도 뉴욕 남단의 든든한 관문처럼 이곳을 지키고 있다.

18세기로 떠나는 타임캡슐, 히스토릭 리치먼드 타운
다음으로 향한 곳은 히스토릭 리치먼드 타운(Historic Richmond Town)이었다. 차창 밖으로 붉은 벽돌집과 나무 울타리가 보이기 시작하자, 나는 마치 시간의 틈새로 들어서는 기분이 들었다. 뉴욕의 다른 동네와는 전혀 다른 온도였다. 고층 빌딩 대신 오래된 학교와 대장간, 굴뚝이 있는 가정집이 이어지고, 바람 속엔 먼지 대신 기억의 냄새가 떠돌았다.
이곳은 17세기부터 19세기 사이, 뉴욕의 초창기 모습이 고스란히 보존된 ‘살아 있는 마을’이다. 미국에서 가장 오래된 학교 건물로 알려진 보를레저의 집(Voorlezer’s House) 앞에 서니, 300년 전 아이들이 종이와 깃펜으로 글씨를 배우던 장면이 떠오르는 듯했다. 전통 복장을 입은 해설자가 대장간의 망치를 두드리는 소리, 벽난로에 구워지는 파이 냄새는 단순한 퍼포먼스가 아니었다. 그 시절의 리듬과 호흡이 그대로 살아 있는 듯했다.

나는 그 길을 천천히 걸었다. 나무 그늘 아래 오래된 벤치에 앉아, 뉴욕의 뿌리가 바로 이 느린 시간 안에 있었음을 다시금 깨달았다. 리치먼드 타운은 과거를 보여주는 박물관이 아니라, 지금의 나를 되돌아보게 만드는 조용한 타임캡슐이었다.
예술과 바람이 머무는 곳, 스너그 하버
나는 스태튼 아일랜드의 또 다른 숨결을 따라 스너그 하버 컬처럴 센터(Snug Harbor Cultural Center)로 발걸음을 옮겼다. 과거엔 은퇴한 선원들의 안식처였지만, 지금은 예술과 자연, 그리고 시간이 공존하는 문화 복합 공간으로 다시 태어난 곳이다. 19세기 그리스·로마풍 건물들과 넓은 조경 정원, 공연장과 갤러리가 한데 어우러져, 도시 한복판에 숨겨진 예술의 정원처럼 조용히 펼쳐져 있었다.
잔디광장 너머로 부드러운 햇살이 스며들고, 느티나무 아래 벤치에 앉아 있으면 바람이 마치 클래식 선율처럼 귀를 스쳐 간다. 천천히 발길을 옮기다 보면 곳곳에 놓인 야외 조각과 갤러리 전시들이 자연과 조화를 이루며, 눈과 마음을 번갈아 적신다.
그리고 그 한쪽, 조용한 대나무 숲 사이로 숨어 있는 작은 문을 지나면 뜻밖의 풍경이 펼쳐진다. 바로 중국 학자의 정원(Chinese Scholar’s Garden). 정갈하게 배치된 돌과 연못, 구불구불 이어지는 회랑, 한자로 새겨진 문양들까지 — 이곳은 마치 고요한 수묵화 속을 거니는 듯한 시간이었다. 동양의 절제된 아름다움이 서양의 조경 속에 자연스럽게 녹아드는 모습은 그 자체로 한 편의 시(詩)였다.

예술과 자연, 그리고 동서양의 감성이 겹쳐진 이 정원에서 나는 오래도록 앉아 있었다. 스태튼 아일랜드가 품고 있는 고요한 힘과, 그 속에 담긴 다양성의 향기를 마음껏 느낄 수 있었던 오후. 스너그 하버는 단순한 정원이 아니라, 도시의 소음을 닦아내고 삶의 감각을 다시 깨워주는 살아 있는 예술 작품이었다.
국경을 넘는 손맛, 추억으로 차려낸 저녁 한 끼
스태튼 아일랜드 페리를 타러 가는 길목, 우연히 발견한 작은 식당 에노테카 마리아(Enoteca Maria). 외관은 평범했지만, 진짜 이야기는 주방 안에서 시작되고 있었다. 이름난 셰프 대신, 전 세계에서 온 ‘논나(Nonna, 이탈리아어로 할머니라는 뜻)’ 들이 돌아가며 자신만의 가정식 레시피로 음식을 만들어내는 특별한 식당이었다.

그날 저녁, 시칠리아 출신의 할머니가 주방을 지키고 있었다. 마늘과 토마토 향이 골목까지 퍼져 나왔고, 반죽을 밀고 있는 두 손에는 세월의 결이 고스란히 묻어 있었다. 나는 추천을 받아, 진한 토마토소스에 조심스럽게 담긴 미트볼과 손수 만든 파파르델레 파스타를 주문했다. 접시 위에는 단순한 식사가 아니라, 누군가의 인생 한 조각이 정성껏 담겨 있었다. 부드러운 면발 사이로 스며든 풍미, 저녁의 적막 속에 은근히 번지는 대화의 숨결 — 그 모든 것이 감정의 안감처럼 조용히 나를 감싸주었다.
스태튼 아일랜드 페리에서 보는 맨해튼의 야경
저녁 식사를 마치고, 나는 천천히 스태튼 아일랜드 페리 선착장으로 향했다. 붉게 물든 하늘이 서서히 어두워지고 있었고, 하루의 마지막 풍경은 바다 위로 잔잔히 내려앉고 있었다. 이곳에서 맨해튼까지는 단 25분, 무엇보다 이 아름다운 항해는 ‘무료’다. 여행자들 사이에선 이미 유명한 노선이지만, 알고 보면 그 자체가 하나의 작은 선물처럼 느껴진다.

페리에 올라 뒤편 난간에 기대자, 도시의 불빛이 점점 가까워졌다. 강 위에 반짝이는 야경은, 스태튼 아일랜드의 고요한 하루를 환하게 비춰주는 마지막 인사 같았다. 멀리 자유의 여신상이 조용히 등을 돌리고 있었고, 자유와 고요 사이에서 나는 잠시 말없이 서 있었다. 바람은 조금 차가웠지만, 마음은 따뜻했다. 오늘 하루, 도시의 가장 조용한 숨결과 마주했고, 가장 오래된 뉴욕을 걸었고, 국경을 넘은 손맛과 예술의 쉼표들을 가슴에 담았다. 그리고 지금, 맨해튼의 빛이 다시 내 앞에 도착하고 있었다.
어쩌면 뉴욕을 여행한다는 건, 이렇게 느린 호흡으로 도시의 뒷모습을 마주하는 일인지도 모르겠다. 반짝이는 빌딩보다 더 깊은 이야기는, 고요한 물결과 함께 우리 곁을 흘러가고 있었다.
조PD의 시선
하루의 끝, 도시의 불빛 아래에서 천천히 감정을 정리하게 만드는 시간이 있다. 속도를 늦추고 오늘 하루를 다시 펼쳐보게 하는 멜로디. 맨해튼의 야경을 바라보며 귓가에 잔잔히 흘러드는 그 노래는, 스태튼 아일랜드의 하루를 ‘기억’으로 바꿔주는 마지막 선율이었다. 그리고 나는 생각했다. 이토록 느리고 다정한 뉴욕이 있어서, 참 다행이라고.
조PD의 추천 음악
여섯 개의 보로를 모두 걷고 난 뒤, 마지막으로 남는 것은 결국 하나의 꿈 같은 장면이다. 그 모든 하루가 한 편의 노래로 흘러간다.
The Beatles — 「A Day in the Life」
“And somebody spoke and I went into a dream.”
(그때 누군가 말을 걸었고, 나는 꿈속으로 들어갔어.)
에필로그
다시, 길 위에서
여섯 개의 보로를 모두 걷고 나서야 알게 되었다. 뉴욕을 안다는 것은 결국 그 도시를 살아간 사람들을 안다는 뜻이라는 걸. 맨해튼의 속도, 브루클린의 실험, 퀸즈의 다양한 목소리, 더 브롱스의 솔직함, 그리고 스태튼 아일랜드의 고요함. 그 모든 표정은 사실 한 가지를 말하고 있었다. 각자의 자리에서, 각자의 방식으로, 사람들은 오늘을 살아내고 있다는 것.
나는 12년을 뉴욕에서 살았다. 그때는 그 도시가 너무 빠르고 거대해서, 정작 그 안에 무엇이 담겨 있는지 들여다볼 여유가 없었다. 떠나고 나서야, 그리고 다시 여행자의 눈으로 돌아와서야 비로소 보이기 시작했다. 어쩌면 우리 인생도 그런 게 아닐까. 한복판에 있을 때는 보이지 않다가, 한 걸음 물러서야 그 풍경의 의미가 천천히 떠오른다.
이 책에 담은 것은 화려한 명소의 목록이 아니다. 베이글 가게 주인의 웃음, 잭슨하이츠에서 필요하지 않은 물건을 사주던 중년 여성의 손길, 브루클린 브리지 파크에서 말없이 손을 맞잡고 있던 노부부 — 그런 작은 장면들이다. 렌즈 너머에서 내가 정말 포착하고 싶었던 것은 늘 그런 것들이었다. 풍경은 거들 뿐, 본질은 언제나 사람과 시간 안에 있었다.
뉴욕편을 여기서 닫는다. 하지만 길은 계속 이어진다. 다음 무대는 캘리포니아다. 내가 지금 살아가고 있는 곳, 태평양의 햇살과 사막의 고요, 그리고 또 다른 결의 사람들이 사는 땅. 뉴욕이 내게 ‘속도 속에서 멈춰 서는 법’을 가르쳐주었다면, 캘리포니아는 또 어떤 이야기를 건네올지 나도 궁금하다.
그때 다시, 길 위에서 만나뵙기를.. 조피디의 시선은 계속된다.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조선웅 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