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피디의 시선 – 캘리포니아> 조선웅 지음

프롤로그

두 번째 도시를 펼치며

『조피디의 시선』의 첫 권을 뉴욕으로 연 것은, 나에게 너무나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뉴욕은 내가 미국에서 처음 발 디딘 도시였고, 12년의 시간이 새겨진 도시였으니까. 첫 책을 덮으며 나는 독자들에게 약속했다. 다음 무대는 캘리포니아라고. 이 책은 그 약속의 응답이다.

뉴욕편을 쓰는 동안, 나는 12년 전의 나를 자주 떠올렸다. 캐리어 하나를 끌고 낯선 도시의 지하철 개찰구를 통과하던 그 사람. 그때의 나는 모든 것이 두렵고 또 설레었다. 뉴욕은 그런 나를 받아주었고, 단련시켰고, 끝내 ‘뉴요커’라 불러도 어색하지 않은 사람으로 만들어주었다. 그 도시에서 나는 버티는 법을 배웠다.

그리고 또 한 번, 나는 삶의 무대를 옮겼다. 뉴욕에서 캘리포니아로. 한국에서 뉴욕으로 건너오던 그때처럼, 가장 좋았던 자리에서 떠나는 결정이었다. 사람들은 종종 묻는다. 그렇게 좋았다면서 왜 떠났느냐고. 그 질문에 대한 답을, 나는 이 책 한 권에 걸쳐 천천히 풀어놓으려 한다.

캘리포니아는 도시가 아니라 하나의 거대한 세계였다. 뉴욕편이 한 도시의 다섯 개 심장을 걷는 여정이었다면, 캘리포니아편은 한 주(州)가 품은 다섯 개의 얼굴을 만나는 여정이다. 천사의 도시와 안개의 도시가 보여주는 도시의 얼굴, 1번 국도가 펼쳐 보이는 해안의 얼굴, 침묵으로 가득한 사막의 얼굴, 거대한 절벽이 우뚝 선 자연의 얼굴, 그리고 포도가 천천히 익어가는 와인의 얼굴. 나는 그 다섯 개의 표정을 하나씩 들여다보았다.

이 책을 쓰며 나는 알게 되었다. 뉴욕이 나에게 ‘버티는 법’을 가르쳤다면, 캘리포니아는 ‘풀어놓는 법’을 가르쳐주었다는 것을. 빠르게 달려온 사람에게 ‘이제 천천히 가도 된다’고 말해주는 땅. 사철 내내 관대한 햇빛이 사람의 마음까지 너그럽게 데워놓는 곳. 캘리포니아의 다섯 얼굴은 저마다 다른 풍경을 하고 있었지만, 신기하게도 모두 같은 한마디를 건네고 있었다.

『조피디의 시선』은 여행지의 풍경을 안내하는 책이 아니다. 풍경 너머, 그 안에 깃든 사람과 시간이 조용히 건네는 메시지를 담아내려 했다. 그 마음은 첫 권과 조금도 다르지 않다. 렌즈를 들고 도시를 바라볼 때 내가 정말 담고 싶었던 것은 멋진 장면이 아니라, 그 장면이 품고 있는 인생의 본질이었다.

이제 두 번째 도시를 펼친다. 서쪽의 빛을 따라, 캘리포니아의 다섯 얼굴을 만나러 가는 길에 당신을 초대한다.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조선웅 씀


– 목차 –

  프롤로그 — 두 번째 도시를 펼치며

01  서쪽으로, 빛을 따라가다

02  로스앤젤레스, 천사의 도시를 걷다

03  샌프란시스코, 안개를 두른 도시

04  1번 국도, 바다를 따라 내려가다

05  사막, 침묵이 건네는 말

06  요세미티, 거인들 앞에 서다

07  나파밸리, 천천히 익어가는 시간

  에필로그 — 천천히 가도 좋다


Chapter 01

서쪽으로, 빛을 따라가다

2018년 늦여름, 나는 JFK 공항에 다시 섰다. 12년 전, 캐리어 하나를 끌고 미국이라는 낯선 땅에 처음 발을 디뎠던 바로 그 공항이었다. 그때 나는 이곳으로 들어왔고, 오늘 나는 이곳에서 떠난다. 같은 공항이 한 사람의 인생에서 시작점이자 출발점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나는 그날 처음 알았다.

마음 한편에는 오래전부터 서부가 있었다. 영화 속에서, 음악 속에서, 누군가의 여행기 속에서 만난 캘리포니아. 사막과 바다가 한 주(州) 안에 공존하고, 사람들은 느리게 걷고, 햇빛은 사철 내내 관대하다는 그 땅. 그곳의 빛이 어떤 색일지, 그곳의 공기가 어떤 무게일지 나는 늘 궁금했다. 그래서 나는 또 한 번, 삶의 무대를 옮기기로 했다.

다섯 시간의 챕터

비행기가 활주로를 박차고 오르자, 창밖으로 도시가 천천히 작아졌다. 마천루가 손톱만 해지고, 이내 구름 아래로 사라졌다. 12년이 그렇게 한 장의 풍경으로 접혀 내려갔다.

다섯 시간. 나는 창에 이마를 댄 채 발밑으로 흘러가는 대륙을 바라보았다. 애팔래치아의 주름진 산맥, 끝없이 펼쳐진 중부의 농경지, 붉게 메마른 남서부의 사막. 한 나라 안에 이렇게 다른 세계들이 있다는 것이, 그 높이에서 보니 더없이 선명했다. 비행기는 그 모든 세계를 차례로 넘으며 서쪽으로, 서쪽으로 향했다.

비행기가 서서히 고도를 낮추기 시작했을 때, 창밖의 빛이 달라졌다. 따뜻하고 노란 빛이었다. 갈색 산맥이 보이고, 그 너머로 바둑판처럼 펼쳐진 도시가 나타나고, 마침내 — 반짝이는 태평양이 시야 끝에 걸렸다. 나는 숨을 작게 들이켰다. 캘리포니아였다.

로스앤젤레스, 도시가 건넨 첫인사

LAX공항의 문을 나서는 순간, 가장 먼저 나를 맞은 것은 공기였다. 건조하고 가벼우며, 햇볕에 잘 마른 빨래 같은 공기. 숨을 들이쉬는 것만으로도 어깨가 한 뼘쯤 내려가는 기분이었다. 하늘은 높고 파랬고, 야자수들이 길을 따라 길게 도열해 바람에 잎을 흔들고 있었다. 그것은 마치 도시가 새 식구에게 건네는 느긋한 손짓 같았다.

렌터카 데스크에서 차를 받아 시동을 걸었다. 이곳에서는 자동차가 곧 두 다리라는 걸 나는 알고 있었다. 가족을 태우고 공항을 빠져나오자, 405번 프리웨이가 우리를 맞았다. 창문을 조금 내렸다. 따뜻한 바람이 차 안으로 흘러들었고, 라디오에서는 경쾌한 옛 팝송이 흘러나왔다. 옆 차선의 운전자는 선글라스를 끼고 한 손으로 핸들을 잡은 채, 음악에 맞춰 고개를 까닥이고 있었다. 그 모습이 어찌나 자연스럽고 편안해 보이던지, 나도 모르게 따라 웃었다. 마치 오래전부터 알던 풍경 속으로 미끄러져 들어가는 기분이었다.

낯설지만, 익숙한

캘리포니아는 분명 처음 와보는 땅이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낯섦 속에는 익숙함이 섞여 있었다.

생각해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나는 평생 이 땅을 영화로, 음악으로, 사진으로 만나왔으니까. 차창 밖으로 스치는 야자수의 실루엣은 수많은 영화의 오프닝에서 본 것이었고,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멜로디는 언젠가 흥얼거려본 것이었으며, 도로 표지판에 적힌 지명들은 노랫말 속에서 익히 들어온 이름들이었다. 한 번도 와본 적 없는 곳인데, 마치 오래된 꿈속을 걷는 것 같았다. 처음 보는 풍경 앞에서 자꾸만 ‘아, 이거구나’ 하는 말이 나왔다.

해는 뉘엿뉘엿 기울고 있었다. 캘리포니아의 노을은 소문대로였다. 하늘은 분홍과 주황, 옅은 보라로 천천히 물들어갔고, 야자수들은 그 배경 앞에서 까만 실루엣으로 또렷하게 섰다. 신호에 멈춰 설 때마다 식구들은 말없이 창밖을 바라보았다. 아무도 입을 열지 않았지만, 같은 풍경 앞에서 같은 마음이라는 걸 우리는 알고 있었다. 우리, 잘 왔구나.

엔젤리노스의 속도

나는 이 도시의 사람들을 처음으로 천천히 관찰하게 되었다.로스앤젤레스 사람들을 엔젤리노스(Angelenos)라 부른다고 했다. 천사의 도시에 사는 사람들. 그 이름이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그들은 좀처럼 서두르지 않았다. 카페 야외 테이블에 앉아 오전 햇볕을 쬐며 한참을 이야기했고, 길을 걸을 때도 보폭이 느긋했다. 운전을 할 때조차, 신호가 바뀌기를 조급해하지 않았다.

잔디를 손질하던 노부부가 지나가는 우리에게 가볍게 손을 흔들었다. 한 아이는 자전거를 타고 그 옆을 천천히 돌고 있었고, 어느 집 앞마당에는 오렌지 나무가 열매를 매단 채 서 있었다. 동네 전체가 낮고 넓게 펼쳐져 있어서, 풍경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의 긴장이 풀렸다. 이곳 사람들의 여유는 무언가를 포기한 게으름이 아니었다. 그것은 좋은 날씨와 좋은 빛을 충분히 누리겠다는 하나의 태도였다. 사철 내내 관대한 햇빛이, 사람들의 마음까지 너그럽게 데워놓은 듯했다.

빛과 바다의 도시

며칠이 지나며, 나는 캘리포니아의 날씨가 그 자체로 하나의 축복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아침이면 해가 어김없이 떠올랐고, 하늘은 거의 매일 파랬다. 습하지 않은 공기는 그늘에만 들어서면 서늘했고, 저녁이면 바다에서 불어온 바람이 도시의 열기를 부드럽게 씻어냈다. 비가 드물어, 사람들은 우산을 들고 다니는 법을 잊은 듯했다. 날씨를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삶이 이렇게 마음을 가볍게 하는 것인 줄, 나는 이곳에 와서야 알았다.

차를 몰아 멀지 않은 곳에 바다가 있었다. 끝없이 펼쳐진 태평양이 햇빛을 받아 수백만 개의 비늘처럼 반짝였다. 서퍼들은 그 물결 위를 미끄러졌고, 모래 위의 사람들은 책을 읽거나, 그저 눈을 감고 햇볕에 몸을 맡겼다. 도시는 하늘을 찌르며 위로 솟기보다, 햇빛을 가득 받으며 옆으로 넓게 누워 있었다. 낮은 건물들, 넓은 도로, 그 사이를 채운 야자수와 자카란다의 보랏빛 꽃. 언덕 위로는 그림 같은 집들이 점점이 박혀 있었고, 밤이 되면 도시 전체가 거대한 보석함처럼 불빛으로 반짝였다.

낯선 도시였다. 그러나 그 낯섦은 나를 밀어내는 낯섦이 아니라, 어서 오라고 손짓하는 낯섦이었다.

조피디의 시선

새로운 곳에 도착한다는 것은, 새로운 나를 마주하는 일이기도 하다. 캘리포니아의 첫 며칠 동안, 나는 내가 생각보다 빨리 이 빛에 익숙해지고 있다는 걸 느꼈다. 어쩌면 우리가 어떤 장소를 사랑하게 되는 건, 그곳이 완전히 낯설어서가 아니라 — 낯섦 속에서 오래 그리던 무언가를 발견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나는 평생 이 땅을 꿈으로만 만나왔고, 이제 그 꿈의 한복판에 서 있었다. 캘리포니아는 나에게 다섯 개의 얼굴을 차례로 보여줄 것이다. 도시의 얼굴, 해안의 얼굴, 사막의 얼굴, 거인들의 얼굴, 그리고 와인과 시간의 얼굴. 그 첫 페이지가, 따뜻한 빛과 함께 막 넘어가고 있었다.

조피디의 추천 음악

캘리포니아에 도착한 첫 며칠 동안, 나는 이 오래된 노래를 반복해 들었다. 멀리 떠나온 사람의 설렘과, 이제 막 시작된 따뜻한 날들에 대한 예감이 그 멜로디 안에 모두 들어 있었다.

The Mamas & the Papas — 「California Dreamin’」

“All the leaves are brown, and the sky is gray / I’d be safe and warm, if I was in L.A.”

(나뭇잎은 다 갈색이고 하늘은 잿빛인데 / 내가 L.A.에 있다면, 따뜻하고 편안할 텐데.)


Chapter 02

로스앤젤레스, 천사의 도시를 걷다

로스앤젤레스는 한눈에 담기지 않는 도시다. 위로 솟기보다 끝없이 옆으로 펼쳐진 도시. 그래서 이 도시를 안다는 건, 하루를 통째로 들여 동쪽 끝에서 서쪽 바다까지 천천히 가로질러 보는 일이다. 어느 맑은 날, 나는 그렇게 LA를 걷기로 했다.

아침, 다운타운에서 만난 옛 시간

하루의 시작은 다운타운이었다. 로스앤젤레스에 이렇게 빽빽한 고층 빌딩 숲이 있다는 사실은, 넓게 누운 이 도시의 인상과 쉽게 겹쳐지지 않았다. 그러나 다운타운에 들어서자, LA에도 분명 도시의 심장이 뛰고 있었다. 유리와 강철로 된 마천루들 사이로 아침 햇살이 비스듬히 쏟아졌고, 출근길 사람들의 발걸음이 보도 위를 채웠다.

내가 찾아간 곳은 엔젤스 플라이트(Angels Flight)였다. ‘세상에서 가장 짧은 철도’라는 별명을 가진 이 작은 케이블 철도는, 1901년부터 벙커 힐의 가파른 언덕을 오르내려 온 LA의 살아 있는 유물이다. 주황색의 앙증맞은 객차 두 대가 가느다란 레일 위에서 서로 엇갈리며 오르내리는 모습은, 마치 도시가 간직한 오래된 장난감 같았다. 객차의 이름은 시나이와 올리벳. 백 년이 넘도록 같은 언덕을 오르내린 두 형제였다.

길이는 채 100미터도 되지 않았다. 탑승 시간은 1분 남짓. 나무로 된 객차에 올라타자, 낡은 도르래가 끼익 소리를 내며 나를 언덕 위로 천천히 끌어올렸다. 그 짧은 1분 동안, 나는 묘한 기분에 사로잡혔다. 발아래로는 현대적인 마천루가 솟아 있는데, 내가 탄 것은 백 년 전의 시간이었다. 이 도시가 미래만을 향해 달려온 게 아니라, 오래된 것들을 곁에 두고 함께 살아왔다는 사실이 그 작은 객차 안에 담겨 있었다.

언덕 위에서 내려다본 다운타운은 아침빛 속에서 반짝였다. 엔젤스 플라이트가 영화 「라라랜드」에 잠깐 등장했던 것이 떠올랐다. 꿈을 좇는 두 사람이 이 도시의 골목골목을 누비던 그 영화처럼, LA는 누구에게나 ‘한번 해봐도 좋다’고 속삭이는 도시였다. 나의 하루도, 그렇게 언덕 위에서 시작되었다.

한낮, 그리피스 파크에서 도시를 내려다보다

다운타운을 나와, 나는 북서쪽의 그리피스 파크(Griffith Park)로 향했다. 도심에서 차로 멀지 않은 거리인데도, 산길을 오르기 시작하자 풍경이 완전히 바뀌었다. 마른 풀과 관목이 뒤덮인 언덕, 그 사이로 난 구불구불한 도로. 미국에서 가장 큰 도시 공원 중 하나라는 이곳은, 도시 한복판에 통째로 들어앉은 산이었다.

언덕 꼭대기에는 그리피스 천문대(Griffith Observatory)가 있었다. 1935년에 지어진 이 아르데코 양식의 하얀 건물은, 구릿빛 돔을 머리에 인 채 LA 전체를 굽어보고 있었다. 천문대 앞 난간에 서자, 로스앤젤레스가 한눈에 펼쳐졌다. 끝이 보이지 않을 만큼 광활하게 깔린 도시. 다운타운의 빌딩 숲이 저 멀리 작게 모여 있었고, 맑은 날이면 그 너머로 태평양의 푸른 선까지 어렴풋이 보였다.

그리피스 천문대 역시 수많은 영화가 사랑한 장소였다. 제임스 딘의 「이유 없는 반항」이 이곳에서 촬영되었고, 「라라랜드」의 두 주인공이 별빛 아래 춤추던 장면도 이 천문대의 밤을 배경으로 했다. 낮의 천문대는 분주한 관광객들로 북적였지만, 나는 잠시 난간에 기대어 도시를 바라보았다. 저 거대한 도시의 수많은 불빛 하나하나가 누군가의 집이고, 누군가의 하루라는 생각이 들었다. 천문대는 우주를 바라보기 위해 지어진 곳이지만, 정작 그곳에 선 사람들은 모두 발아래의 도시를 먼저 내려다보고 있었다.

오후, 언덕 위의 아홉 글자

그리피스 파크의 능선을 따라 시선을 옮기면, 멀리 또렷하게 보이는 것이 있었다. 산비탈에 하얗게 새겨진 아홉 개의 글자. HOLLYWOOD. 영화를 사랑하는 사람으로서, 그 글자를 그냥 지나칠 수는 없었다. 차를 몰아 사인이 더 가까이 보이는 전망 지점인 레이크 할리우드 파크(Lake Hollywood Park)로 향했다.

가까이서 본 할리우드 사인은, 생각보다 소박했다. 거대한 금속 글자들은 세월의 흔적을 안은 채 마른 산비탈에 박혀 있었다. 사실 이 사인은 처음부터 영화의 상징으로 세워진 것이 아니었다. 1923년, 원래는 ‘HOLLYWOODLAND’라는 부동산 광고판으로 세워졌다고 한다. 한낱 광고판으로 시작한 이 글자들이, 백 년의 시간을 지나며 전 세계 사람들이 품는 꿈의 이름이 된 것이다.

그 아홉 글자를 바라보는 동안, 마음 한구석이 묘하게 일렁였다. 저 글자는 단순한 간판이 아니었다. 그것은 한 세기 동안 수많은 사람이 품어온 꿈의 이름이었다. 무명의 배우가 버스에서 내려 처음 저 사인을 올려다보던 순간, 시나리오를 손에 쥔 청년이 저 글자에 자신의 미래를 겹쳐보던 순간. 누군가에겐 이루어진 꿈이었고, 누군가에겐 끝내 닿지 못한 꿈이었다. 그 모든 꿈의 무게가 언덕 위에 하얗게 새겨져 있었다. 화려한 영화의 도시 뒤에 숨은, 수많은 이름 없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그 사인 안에 함께 있었다.

해 질 무렵, 게티 센터의 빛

오후의 해가 길어질 무렵, 나는 서쪽으로 방향을 틀어 게티 센터(The Getty Center)로 향했다. 언덕 아래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하얀 무인 트램에 올랐다. 트램이 천천히 언덕을 오르는 동안, 도시는 발아래로 점점 멀어졌다. 그 5분 남짓한 오르막은, 분주한 도시에서 고요한 예술의 공간으로 건너가는 다리 같았다.

언덕 위에 펼쳐진 게티 센터는, 그 자체로 하나의 거대한 예술 작품이었다. 이탈리아에서 가져온 베이지빛 석회암으로 지어진 건물들은, 오후의 햇살을 받아 따뜻하게 빛났다. 건축가 리처드 마이어가 설계한 이 미술관은 직선과 곡선, 빛과 그림자를 정교하게 엮어놓은 공간이었다. 안으로 들어서면 반 고흐의 「아이리스」를 비롯한 명화들이 기다리고 있었지만, 솔직히 고백하자면 나를 더 사로잡은 건 건물 바깥이었다.

중앙 정원에는 부겐빌레아가 보랏빛으로 흐드러졌고, 잔디밭에 앉은 사람들은 멀리 도시와 바다를 바라보며 시간을 흘려보냈다. 해가 기울수록 석회암 벽은 흰색에서 미색으로, 다시 옅은 황금빛으로 시시각각 색을 바꾸었다. 도시를 가득 채웠던 빛이, 이 언덕 위에서는 천천히 농익어가고 있었다. 예술 작품을 보러 온 사람들이, 정작 미술관 밖 난간에 기대어 노을을 기다리는 이유를 알 것 같았다.

노을, 산타모니카에서 하루를 닫다

게티 센터를 내려와, 나는 하루의 마지막 빛을 좇아 바다로 향했다. 산타모니카였다. 서쪽 하늘이 붉게 물들기 시작할 무렵 해변에 닿았다. 산타모니카 피어(Santa Monica Pier)의 오래된 관람차가 노을을 배경으로 천천히 돌고 있었고, 그 불빛이 하나둘 켜지며 어둑해지는 하늘 아래 또렷해졌다. 끝없이 펼쳐진 모래밭 위로 사람들이 느리게 흩어졌다. 한 노인은 메탈 디텍터로 모래를 훑고 있었고, 젊은 연인은 맨발로 파도의 끝자락을 밟으며 걸었다. 서퍼들은 마지막 파도를 기다리며 검은 실루엣으로 물 위에 떠 있었다.

부두 위를 걷다가, 한 표지판 앞에서 걸음을 멈췄다. ‘Route 66 — End of the Trail.’ 시카고에서 시작해 미국 대륙을 가로지르는 그 길고 긴 66번 국도가, 바로 이곳 산타모니카 해변에서 끝난다는 표지였다. 수많은 사람이 더 나은 삶을 찾아 서쪽으로, 서쪽으로 달려온 그 길의 종착점. 그 길의 끝에 이 태평양의 노을이 있었다.

표지판 앞에서 나는 한참을 서 있었다. 미국이라는 거대한 대륙을 가로지른 길이, 결국 이 바다 앞에서 멈춘다는 것. 더 이상 서쪽으로 갈 수 없는 그 끝에서, 사람들은 무엇을 느꼈을까. 해는 천천히 수평선 아래로 잠겼고, 하늘은 주황에서 분홍으로, 다시 짙은 보랏빛으로 물들었다. 관람차의 불빛이 어둠 속에서 더욱 환하게 돌아갔다. 하루를 통째로 들여 동쪽 끝에서 서쪽 바다까지 LA를 가로질러 왔다. 옛 시간이 담긴 작은 철도에서 시작해, 도시를 굽어보는 언덕을 지나, 꿈의 이름이 새겨진 사인을 바라보고, 빛이 농익는 언덕 위 미술관을 거쳐, 마침내 대륙의 길이 끝나는 바다에 닿았다. 그 모든 풍경이 하루 안에 담겼다는 것이, 노을 앞에서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

조피디의 시선

로스앤젤레스를 하루 동안 걸으며 나는 알게 되었다. 이 도시는 한 가지 표정으로 설명되지 않는다는 것을. 백 년 된 철도와 최첨단 마천루가, 화려한 꿈의 사인과 그 뒤에 숨은 이름 없는 사람들이, 분주한 도시와 고요한 언덕 위 미술관이 한 도시 안에 함께 살고 있었다. LA는 어쩌면 거대한 영화 세트장 같은 도시다. 누구나 이곳에서 자기만의 장면을 찍을 수 있고, 그 장면에 어떤 결말을 쓸지는 각자의 몫이다. 그리고 그 모든 장면 위로, 이 도시는 변함없이 관대한 빛을 쏟아붓는다. 천사의 도시라는 이름은, 어쩌면 그 빛에 대한 다른 표현인지도 모른다.

조피디의 추천 음악

노을이 지는 산타모니카 해변에서, 나는 자연스럽게 이 곡을 떠올렸다. 이 도시를 향한 꾸밈없는 사랑과 경쾌한 활기가, 그 멜로디 안에 가득 담겨 있었다.

Randy Newman — 「I Love L.A.」

“Rolling down the Imperial Highway / With a big nasty redhead at my side…”

(임페리얼 하이웨이를 달려 내려가네 / 옆자리엔 멋진 빨강 머리를 태우고…)


Chapter 03

샌프란시스코, 안개를 두른 도시

샌프란시스코는 로스앤젤레스와 같은 캘리포니아의 도시이면서도, 전혀 다른 인격을 지닌 곳이다. LA가 햇빛을 받으며 옆으로 길게 누운 도시라면, 샌프란시스코는 안개를 두른 채 언덕 위로 솟아오른 도시다. 나는 그 다른 얼굴이 궁금해, 어느 날 북쪽으로 향했다.

비행기에서 내리는 순간부터 공기가 달랐다. 서늘하고 축축했다. 한여름인데도 가벼운 재킷이 필요했다. 도시는 언덕 위에 지어져 있었고, 거리는 오르락내리락 가팔랐다. 그 가파른 비탈을 따라 파스텔 톤의 빅토리아풍 주택들이 어깨를 맞대고 줄지어 서 있었다. 케이블카가 땡땡 종을 울리며 언덕을 기어올랐다. LA가 자동차의 도시였다면, 샌프란시스코는 걷고 오르고 매달리는 도시였다.

아침, 트윈 픽스에서 도시를 펼쳐 보다

하루의 시작은 트윈 픽스(Twin Peaks)였다. 도시 한복판에 솟은 두 개의 봉우리. 차를 몰아 구불구불한 길을 오르자, 발아래로 샌프란시스코가 점점 넓게 펼쳐졌다. 정상 전망대에 서서 도시를 내려다본 순간, 나는 잠시 말을 잃었다.

도시 전체가 한눈에 담겼다. 바둑판처럼 정연하게 깔린 거리, 그 격자를 빼곡히 채운 알록달록한 집들. 거리는 언덕의 굴곡을 따라 오르내려서, 마치 도시 전체가 잔잔한 파도처럼 일렁이는 듯했다. 멀리 다운타운의 마천루가 모여 있었고, 그 너머로 베이의 푸른 물과 다리들이 보였다. 아침 안개가 도시의 한쪽 자락을 부드럽게 덮고 있었고, 그 안개는 햇살을 받으며 천천히 걷히는 중이었다.

바람이 거셌다. 트윈 픽스의 바람은 사철 차갑다고 했다. 그 바람을 맞으며 도시를 내려다보는 동안, 나는 이 도시가 왜 그토록 많은 예술가와 몽상가를 끌어당겼는지 어렴풋이 알 것 같았다. 언덕 위에서 내려다본 샌프란시스코는, 질서정연하면서도 어딘가 꿈결 같았다. 정확한 격자 위에 놓인 동화 같은 풍경. 그 모순된 아름다움이 이 도시의 첫인상이었다.

한낮, 유니언 스퀘어의 활기 속으로

언덕을 내려와, 나는 도시의 심장부인 유니언 스퀘어(Union Square)로 향했다. 트윈 픽스의 고요한 바람과는 딴판으로, 이곳은 활기로 가득했다. 광장을 둘러싼 백화점과 상점들, 그 사이를 오가는 사람들. 케이블카가 광장 곁을 지나며 종을 울렸고, 거리의 악사는 첼로를 켜고 있었다. 광장 한가운데에는 승리의 여신상이 높은 기둥 위에 서 있었고, 그 아래 계단에는 사람들이 삼삼오오 앉아 햇볕을 쬐며 점심을 먹고 있었다.

유니언 스퀘어 주변을 걷다 보면, 샌프란시스코가 단순히 안개와 우수의 도시만은 아니라는 걸 알게 된다. 이곳에는 분명한 도시의 세련됨과 활기가 있었다. 오래된 호텔의 우아한 정문, 갤러리가 늘어선 좁은 골목, 그리고 그 골목 끝에서 갑자기 나타나는 가파른 언덕길. 평지를 걷다가도 모퉁이만 돌면 어김없이 오르막이 나타나서, 이 도시를 걷는 일은 한순간도 단조롭지 않았다.

나는 케이블카를 한 번 타보기로 했다. 1873년부터 이 도시의 언덕을 오르내려 온 케이블카는, 샌프란시스코가 옛것을 버리지 않고 곁에 두는 도시라는 증거였다. 나무로 된 객차의 바깥쪽 발판에 매달려 언덕을 오르내리자, 바람이 얼굴을 때리고 도시의 풍경이 빠르게 스쳐 갔다. 관광객도 현지인도, 그 발판에 매달린 사람들의 얼굴엔 똑같이 아이 같은 웃음이 번졌다.

이 도시 사람들을 샌프란시스칸(San Franciscan)이라 부른다. 흥미로운 건, 정작 토박이 샌프란시스칸들은 도시 이름을 길게 부르지도, ‘Frisco’처럼 함부로 줄여 부르지도 않는다는 점이다. 그들은 그저 이곳을 ‘더 시티(the City)’라 부른다. 베이 에어리어의 수많은 도시 중에서, 대문자로 시작하는 ‘그 도시’는 오직 샌프란시스코 하나뿐이라는 듯이. 그 말투에는 자기 도시를 향한 조용한 자부심이 배어 있었다. 가파른 언덕을 오르내리며 이 도시를 걷다 보면, 그 자부심이 어디서 왔는지 어렴풋이 알 것 같았다.

오후, 피셔맨스 워프 바다 곁에서

케이블카가 향한 곳을 따라, 나는 북쪽 해안가 피셔맨스 워프(Fisherman’s Wharf)에 닿았다. 부두는 활기와 소란으로 가득했다. 갈매기가 끼룩대며 하늘을 맴돌았고, 기념품 가게와 먹거리 노점이 줄지어 늘어서 있었다. 거리의 마술사가 사람들을 모아놓고 묘기를 부렸고, 아이들은 회전목마를 타며 소리를 질렀다. 풍경을 즐기며 피어 39로 발걸음을 옮겼다.

피어 39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건, 사람도 가게도 아닌 바다사자들이었다. 부두 한쪽의 나무 데크 위에, 수십 마리의 바다사자가 누워 있었다. 그들은 서로의 몸 위에 겹쳐 누운 채 게으르게 뒤척였고, 이따금 목청을 높여 우렁차게 울었다. 1989년 지진 이후 어느 날부터 이곳에 모여들기 시작했다는 이 바다사자들은, 이제 누가 뭐래도 피어 39의 주인이었다. 분주한 관광지 한복판에서 세상모르게 늘어져 있는 그 모습이, 어찌나 천연덕스럽던지 한참을 바라보며 웃었다.

부두 끝에 서서 바다를 바라보았다. 멀리 바다 한가운데, 작은 섬 위의 회색 건물이 보였다. 한때 탈출 불가능의 감옥으로 악명 높았던 알카트라즈였다. 숀 코너리와 니컬러스 케이지가 주연한 영화 「더 록」의 무대가 된 그 섬은, 차가운 물살에 둘러싸인 채 화창한 부두의 활기와 묘한 대조를 이루며 고요히 떠 있었다. 영화 속에서는 긴박한 액션의 무대였지만, 실제로 멀리서 바라본 알카트라즈는 의외로 적막하고 쓸쓸했다. 갓 쪄낸 던저니스 크랩과, 속을 파낸 사워도우 빵에 담아주는 클램차우더 한 그릇을 사 들고, 나는 차가운 바닷바람을 맞으며 그 뜨거운 김을 후후 불었다.

해 질 무렵, 안개 속의 금문교

피어를 나와, 나는 이 도시에서 가장 만나고 싶었던 것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금문교(Golden Gate Bridge)였다. 다리에 가까워질수록 안개가 짙어졌다. 거대한 주탑의 윗부분이 흰 안개 속으로 사라져, 다리는 마치 구름 속으로 걸어 들어가는 길처럼 보였다. ‘골든 게이트’라는 이름과 달리, 다리의 색은 황금색이 아니라 깊은 주황빛이었다. 인터내셔널 오렌지라 불리는 그 색은, 안개 낀 회색 하늘 아래에서 오히려 더 선명하고 따뜻하게 빛났다.

다리를 직접 걸어보았다. 보행자길 옆으로 차들이 끝없이 지나가며 다리가 미세하게 진동했고, 태평양에서 불어온 바람은 사정없이 뺨을 때렸다. 그러나 그 한가운데 서서 멀리 도시를 바라보았을 때, 나는 이 다리가 왜 그토록 오랫동안 사랑받아 왔는지 알 것 같았다.

금문교는 단순한 구조물이 아니었다. 그것은 대공황의 한복판이던 1937년, 사람들이 절망 속에서도 미래를 믿고 4년에 걸쳐 바다 위에 세운 의지의 증거였다. 당시 많은 이가 이 거센 해협에 다리를 놓는 일은 불가능하다고 했다. 그러나 그 불가능 위에, 사람들은 끝내 다리를 세웠다. 안개가 다리를 삼켰다 뱉었다 하는 동안에도, 다리는 묵묵히 그 자리에 서서 양쪽의 육지를 이어주고 있었다. 수많은 영화가 이 다리를 카메라에 담았다. 히치콕은 「현기증」에서 이 다리 아래를 운명이 뒤틀리는 자리로 그렸고, 그 밖에도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영화가 이 주황빛 다리를 통해 샌프란시스코를 이야기했다. 금문교는 그 자체로 하나의 거대한 감정이었다. 직접 그 위에 서서 안개와 바람을 맞아본 사람만이, 왜 그토록 많은 카메라가 이 다리 앞에서 멈춰 섰는지 알게 된다.

저녁, 다리 건너 소살리토의 불빛

금문교를 건너면, 다리의 북쪽 끝에 작은 마을이 있다. 소살리토(Sausalito)였다. 다리 하나를 사이에 두었을 뿐인데, 소살리토는 샌프란시스코와 또 다른 공기를 지니고 있었다. 분주한 도시의 긴장이 이곳에는 없었다. 언덕을 따라 그림 같은 집들이 층층이 들어서 있었고, 그 아래 잔잔한 만에는 요트들이 한가로이 떠 있었다. 지중해의 어느 해안 마을을 옮겨다 놓은 듯한 풍경이었다.

해안을 따라 난 길을 천천히 걸었다. 작은 갤러리와 카페, 아기자기한 상점들이 이어졌고, 사람들은 바다를 바라보며 느긋하게 저녁을 맞고 있었다. 만 건너편으로는 샌프란시스코의 스카이라인이 보였다. 낮 동안 그 도시 안에서 분주히 걸었던 내가, 이제는 만을 사이에 두고 그 도시를 바라보고 있었다. 가까이서 보던 도시를 멀리서 바라보는 일에는, 묘한 여운이 있었다.

해가 지자 샌프란시스코의 불빛이 하나둘 켜졌다. 만의 잔잔한 물 위로 그 불빛이 길게 번졌다. 낮에는 안개에 싸여 우수에 잠겨 있던 도시가, 밤이 되자 따뜻한 불빛의 도시로 바뀌어 있었다. 소살리토의 부두에 앉아 그 풍경을 바라보는 동안, 차가운 바람조차 더 이상 춥게 느껴지지 않았다.

조피디의 시선

샌프란시스코를 하루 동안 걸으며, 나는 이 도시가 가진 모순을 사랑하게 되었다. 정연한 격자 위에 놓인 동화 같은 집들, 분주한 부두 곁에 누운 게으른 바다사자들, 불가능 위에 세워진 다리, 그리고 안개의 우수와 불빛의 따뜻함. 샌프란시스코는 어느 한 가지로 정의되기를 거부하는 도시였다. 어쩌면 좋은 도시란, 좋은 사람과 마찬가지로 한마디로 설명되지 않는 법인지도 모른다. 안개가 끼었다고 해서 햇빛이 없는 것이 아니고, 언덕이 가파르다고 해서 오를 수 없는 것이 아니다. 이 도시는 나에게, 모순을 끌어안는 일이 곧 깊이를 갖는 일이라고 조용히 일러주었다.

조피디의 추천 음악

소살리토의 부두에 앉아 만 건너 도시의 불빛을 바라보며, 나는 한 오래된 노래를 떠올렸다. 스콧 매켄지의 「San Francisco」다. 1967년, 전 세계의 젊은이 수십만 명이 평화와 사랑을 좇아 이 도시로 모여들던 ‘사랑의 여름’에 울려 퍼진 노래. “샌프란시스코에 간다면, 머리에 꽃을 꽂으라”는 그 노랫말은, 더 나은 세상을 꿈꾸며 이 언덕의 도시로 향하던 한 세대의 설렘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반세기가 지난 지금도, 이 도시는 여전히 누군가에게 그런 설렘의 이름으로 남아 있다.

Scott McKenzie — 「San Francisco」

“If you’re going to San Francisco / Be sure to wear some flowers in your hair.”

(샌프란시스코에 간다면 / 머리에 꽃을 꽂는 걸 잊지 마세요.)


Chapter 04

1번 국도, 바다를 따라 내려가다

캘리포니아를 가장 캘리포니아답게 만나는 방법은, 1번 국도를 달리는 일이다. 한쪽은 절벽, 한쪽은 태평양. 그 가느다란 경계를 따라 차는 천천히 남쪽으로 흐른다. 나는 샌프란시스코를 등지고, 바다를 오른편에 둔 채 그 길 위에 올랐다. 목적지보다 길 자체가 여행이 되는, 그런 드라이브가 시작되고 있었다.

도시를 빠져나오자 풍경이 천천히 바뀌었다. 빌딩이 사라지고, 언덕이 나타나고, 이윽고 길의 오른편으로 태평양이 모습을 드러냈다. 창문을 내리자 짠 바람이 밀려들었다. 라디오의 음악 소리와 파도 소리가 한데 섞였다. 이정표는 단순했다. ‘Highway 1, South.’ 그 한 줄이, 앞으로의 하루를 약속하고 있었다.

몬터레이, 바다가 기억을 품은 마을

남쪽으로 두어 시간을 달려 처음 닿은 곳은 몬터레이(Monterey)였다. 몬터레이는 바다 냄새가 깊게 밴 마을이었다. 한때 이곳은 정어리 통조림 공장이 즐비한 어업의 도시였다. 그 시절의 흔적이 가장 진하게 남은 곳이 캐너리 로(Cannery Row)다. 바닷가를 따라 늘어선 낡은 목조 건물들은, 한때 비릿한 정어리 냄새와 노동자들의 고함으로 가득했을 것이다. 지금은 그 공장들이 식당과 상점으로 바뀌었지만, 건물의 낡은 골격에는 여전히 옛 시간이 배어 있었다.

이 거리는 작가 존 스타인벡이 같은 이름의 소설 「캐너리 로」로 그려낸 곳이기도 하다. 화려하지 않은 사람들, 가진 것 없이도 하루를 살아내던 노동자와 부랑자들의 이야기. 그 소설을 떠올리며 거리를 걸으니, 식당으로 바뀐 건물들 사이로 옛사람들의 그림자가 어른거리는 듯했다. 바다는 그 모든 흥망을 말없이 지켜봐 왔을 것이다. 공장이 번성하던 시절도, 정어리가 사라지고 공장이 문을 닫던 시절도, 그리고 그 폐허가 다시 사람들로 북적이는 지금도.

몬터레이를 나서며, 나는 17마일 드라이브(17-Mile Drive)로 들어섰다. 몬터레이 반도의 해안을 따라 구불구불 이어지는 이 사설 도로는, 이름 그대로 17마일에 걸쳐 캘리포니아 해안의 가장 우아한 풍경을 펼쳐 보였다. 길은 한쪽으로 짙푸른 태평양을, 다른 한쪽으로 멋진 별장들을 끼고 흘렀다. 차를 천천히 몰며 창밖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한 폭의 풍경화 속을 지나는 기분이었다.

도로변 곳곳에 차를 세울 수 있는 전망 지점이 있었다. 그중 한 곳에서 나는 ‘외로운 사이프러스 (The Lone Cypress)’를 만났다. 바다로 튀어나온 바위 끝에, 나무 한 그루가 홀로 서 있었다. 수백 년 동안 바닷바람을 맞으며 그 자리를 지켜온 나무였다. 거센 바람에 가지가 한쪽으로 휘었지만, 뿌리는 바위를 단단히 움켜쥔 채 결코 쓰러지지 않았다. 혹독한 자리에서 홀로 견뎌온 그 나무의 모습은, 묘하게 마음을 울렸다.

길의 끝자락에서 페블 비치(Pebble Beach)에 닿았다. 잔잔한 잔디가 바다 끝까지 펼쳐지고, 그 너머로 파도가 하얗게 부서지는 곳. 세계적으로 이름난 골프 코스가 이 해안을 따라 자리하고 있었다. 바다와 맞닿은 초록의 잔디, 바위에 부딪혀 흩어지는 물보라, 그리고 그 위를 한가로이 나는 갈매기들. 나는 페블 비치의18번째 홀이 보이는 레스토랑 의자에 앉아 한참 동안 그 풍경을 바라보았다. 분주했던 어업의 도시 몬터레이를 지나, 이렇게 고요하고 우아한 해안에 닿고 보니, 시간이 흐른다는 건 어쩌면 거친 것이 천천히 부드러운 풍경으로 바뀌어 가는 일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카멜, 동화 속으로 걸어 들어간 오후

몬터레이에서 조금 더 남쪽으로 내려가면, 바다를 곁에 둔 작은 마을이 나타난다. 카멜바이더시(Carmel-by-the-Sea). 사람들은 줄여서 그냥 카멜이라 부른다. 카멜에 들어선 순간, 나는 마치 동화책의 한 페이지 속으로 걸어 들어간 기분이었다. 마을은 믿기 어려울 만큼 작고 아기자기했다. 뾰족한 지붕과 둥근 창문을 가진 집들은 마치 과자로 지은 듯했고, 집집마다 가꾼 정원에는 꽃이 흐드러졌다. 거리에는 높은 건물도, 요란한 간판도 없었다. 심지어 집마다 번지수조차 없어서, 사람들은 주소 대신 집의 이름이나 위치로 서로를 찾는다고 했다.

이 작은 마을은 오래전부터 예술가들이 사랑한 곳이었다. 화가와 시인, 사진가들이 이 마을의 빛과 고요를 좇아 모여들었다. 배우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한때 이 마을의 시장을 지냈다는 이야기도, 카멜의 분위기를 알고 나면 고개가 끄덕여진다. 명성보다 고요를, 화려함보다 정취를 택한 사람들의 마을이었다.

골목을 천천히 걸었다. 작은 갤러리와 서점, 손으로 만든 물건을 파는 공방들이 이어졌다. 어느 카페의 야외 테이블에서는 노부부가 말없이 차를 나누고 있었다. 그 골목 끝에 이르자, 거짓말처럼 새하얀 모래의 해변이 나타났다. 카멜 비치였다. 고운 백사장과 에메랄드빛 물, 그리고 바람에 휘어진 사이프러스 나무들. 사람들은 그 모래 위에 앉아 책을 읽거나, 강아지와 함께 파도의 끝을 따라 걸었다. 서두르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카멜은 시간이 다른 속도로 흐르는 마을 같았다.

빅서, 절벽 위에서 마주한 장엄함

카멜을 나서며, 나는 이 여정에서 가장 기다려온 구간으로 들어섰다. 빅서(Big Sur)였다. 빅서는 어떤 마을의 이름이라기보다, 산과 바다가 맞부딪치는 긴 해안 그 자체의 이름이다. 길은 점점 높아졌다. 1번 국도는 깎아지른 절벽의 허리를 따라, 아슬아슬하게 구불구불 이어졌다. 왼편은 산타루시아산맥의 가파른 산비탈, 오른편은 까마득한 절벽 아래로 부서지는 태평양. 그 사이의 좁은 길을 달리는 동안, 나는 몇 번이나 숨을 멈췄다.

빅스비 크릭 다리(Bixby Creek Bridge) 앞에서 차를 세웠다. 깊은 협곡을 가로지르는 이 우아한 아치형 다리는, 빅서를 상징하는 풍경이다. 다리 너머로는 절벽과 바다가 끝없이 펼쳐졌다. 안개가 산허리를 감고 천천히 흘렀고, 그 아래 바다는 짙은 청록빛으로 일렁였다. 인간이 만든 다리 하나가, 자연의 거대한 풍경 속에서 이토록 작고도 아름다울 수 있다는 것이 놀라웠다.

빅서의 풍경 앞에서는 말이 줄어들었다. 그 장엄함은 사람을 압도하면서 동시에 겸손하게 만들었다. 수백만 년에 걸쳐 파도가 깎아낸 절벽, 바람에 휘어진 채 절벽 끝에 선 나무들, 그리고 그 모든 것을 감싸 안는 거대한 침묵. 도시에서 가져온 자잘한 근심들이, 이 풍경 앞에서는 한없이 작게 느껴졌다. 자연은 그 어떤 위로의 말보다도, 그저 거기 그렇게 존재하는 것만으로 사람의 마음을 가라앉혔다.

노을, 바다 끝으로 잠기는 하루

빅서의 어느 절벽 위, 바다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자리에 차를 세웠다. 그리고 해가 지기를 기다렸다. 해는 천천히 수평선을 향해 내려갔다. 하늘이 물들기 시작했다. 처음엔 옅은 금빛이었다가, 점차 주황으로, 다시 분홍과 진홍으로. 바다는 그 하늘빛을 고스란히 받아 거대한 거울처럼 일렁였다. 절벽 위의 나무들은 그 빛을 등진 채 검은 실루엣으로 또렷해졌다. 바람이 잦아들고, 파도 소리만이 아득히 아래에서 올라왔다.

그 자리에 서서, 나는 1번 국도를 따라 내려온 하루를 천천히 되짚었다. 옛 시간이 배어 있던 몬터레이의 부두, 동화처럼 고요하던 카멜의 골목, 그리고 말을 잃게 하던 빅서의 절벽. 그 모든 풍경이 결국 이 한 장면, 바다 끝으로 잠기는 노을을 향해 이어져 온 것 같았다.

해가 마침내 수평선 아래로 사라지자, 하늘에는 잔광만이 오래도록 남았다. 나는 차로 돌아가지 않고, 그 잔광이 완전히 사그라들 때까지 절벽 위에 서 있었다. 서두를 이유가 없었다. 1번 국도는 나에게, 목적지에 닿는 것보다 길 위의 매 순간에 머무는 법을 가르쳐주고 있었다.

조피디의 시선

1번 국도를 달리며 나는 깨달았다. 이 길이 아름다운 건, 풍경이 빼어나서만은 아니라는 것을. 이 길의 아름다움은 ‘속도’에 있었다. 빠르게 달리면 절벽도 바다도 그저 스쳐 지나가는 배경일 뿐이다. 그러나 천천히 달리며, 자주 멈춰 서며, 풍경 앞에서 숨을 고를 때 — 비로소 그 풍경은 마음 안으로 걸어 들어온다. 인생의 길도 그러할 것이다. 우리는 늘 더 빨리, 더 멀리 가려 하지만, 정작 마음에 오래 남는 건 잠시 차를 세우고 바라본 그 노을 같은 순간들이다. 캘리포니아의 해안은 나에게, 길 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도착이 아니라 머무름이라는 것을 일러주었다.

조피디의 추천 음악

절벽 위에서 바다로 잠기는 노을을 바라보며, 나는 이 잔잔한 노래를 떠올렸다. 길 위에 선 사람의 고독과 자유, 그리고 어디로든 흘러갈 수 있다는 설렘이 그 멜로디 안에 함께 담겨 있었다.

Otis Redding — 「(Sittin’ On) The Dock of the Bay」

“Sittin’ in the morning sun / I’ll be sittin’ when the evening comes.”

(아침 햇살 속에 앉아 / 저녁이 올 때까지 그렇게 앉아 있겠네.)


Chapter 05

사막, 침묵이 건네는 말

캘리포니아를 충분히 안다고 생각할 무렵, 나는 동쪽으로 차를 돌렸다. 도시의 빛도, 해안의 파도도 없는 곳. 사람들이 ‘아무것도 없다’고 말하는 그 사막으로. 그러나 그 ‘아무것도 없음’ 속에 무엇이 있는지, 나는 직접 가서 확인하고 싶었다.

로스앤젤레스를 빠져나와 동남쪽으로 향하자, 풍경이 천천히 메말라갔다. 초록이 사라지고, 건물이 사라지고, 이윽고 길 양옆으로는 마른 흙과 관목, 그리고 멀리 황량한 산맥만이 남았다. 도로는 곧게 뻗어 지평선 끝으로 사라졌다.

아침, 오아시스의 도시 팜스프링스

사막 한가운데, 거짓말처럼 푸른 도시가 나타났다. 팜스프링스(Palm Springs) 였다. 황량한 사막을 달려온 눈에, 팜스프링스는 신기루처럼 보였다. 마른 땅 위로 야자수가 줄지어 솟아 있었고, 잘 가꾼 잔디와 푸른 수영장이 곳곳에서 빛났다. 거대한 바위산이 도시의 배경처럼 둘러서 있었고, 그 아래로 낮고 단정한 집들이 펼쳐졌다. 사막 한복판에 피어난 오아시스. 팜스프링스는 그 말이 가장 잘 어울리는 도시였다.

이 도시는 오래전부터 할리우드 사람들이 사랑한 휴양지였다. 20세기 중반, 영화배우와 가수들이 도시의 분주함을 피해 이 사막의 오아시스로 숨어들었다. 그래서 팜스프링스에는 그 시절의 흔적이 짙게 남아 있다. 미드센추리 모던(Mid-Century Modern)이라 불리는 건축 양식의 집들 — 낮고 평평한 지붕, 통유리창, 사막과 어우러진 단순한 선들. 거리를 천천히 달리는 것만으로도, 1950년대의 어느 한가로운 오후로 시간을 거슬러 오르는 듯했다.

나는 팜스프링스 에어리얼 트램웨이(Aerial Tramway)에 올랐다. 회전하는 케이블카가 가파른 산벽을 타고 오르자, 발아래로 사막의 도시가 점점 작아졌다. 놀라운 건 풍경의 변화였다. 출발할 때 사막의 마른 열기 속에 있었는데, 산 위에 내리자 서늘한 솔숲이 펼쳐졌다. 단 10여 분 만에 사막에서 고산의 숲으로 건너온 것이다. 한 장소가 이렇게 다른 두 세계를 품을 수 있다는 사실이, 사막이 결코 단조로운 땅이 아니라는 걸 말해주고 있었다.

한낮, 조슈아트리로 들어서다

팜스프링스를 나와, 나는 북동쪽의 조슈아트리 국립공원(Joshua Tree National Park)으로 향했다. 공원 입구를 지나자, 풍경이 또 한 번 완전히 바뀌었다. 사방에 기묘하게 생긴 나무들이 서 있었다. 두 팔을 하늘로 치켜든 듯한, 가시 돋친 잎을 무성하게 매단 나무. 조슈아트리였다. 사실 나무라기보다 거대한 다육식물에 가까운 이 식물은, 오직 이 일대의 사막에서만 자란다고 했다.

이름의 유래가 흥미로웠다. 19세기, 이 땅을 지나던 모르몬교 개척자들이 이 나무를 보고, 두 팔을 들어 하늘에 기도하며 그들을 약속의 땅으로 인도하는 예언자 여호수아(Joshua)의 모습을 떠올렸다고 한다. 메마른 사막을 횡단하던 사람들에게, 이 기이한 나무는 길을 안내하는 이정표이자 희망의 상징이었던 것이다.

차에서 내려 사막을 걸었다. 발밑에서 마른 흙이 부서졌고, 뜨거운 공기가 아지랑이로 일렁였다. 조슈아트리들은 저마다 다른 자세로 서 있었다. 어떤 나무는 곧게, 어떤 나무는 비스듬히, 어떤 나무는 두 팔을 활짝 벌린 채. 수십, 수백 년을 이 혹독한 땅에서 견뎌온 나무들이었다. 물도 그늘도 귀한 이곳에서, 그들은 서두르지 않고 아주 천천히 자랐다. 살아남기 위해, 욕심을 버리고 느리게 사는 법을 택한 생명들이었다.

거대한 바위 언덕도 곳곳에 솟아 있었다. 둥글둥글한 화강암 바위들이 누군가 일부러 쌓아 올린 듯 기묘한 균형으로 포개져 있었다. 사람들은 그 바위를 기어올랐고, 정상에 앉아 끝없는 사막을 바라보았다. 황량하다고만 생각했던 사막은, 가까이 들여다볼수록 저마다의 생명과 형상으로 가득 차 있었다.

해 질 무렵, 사막이 물드는 시간

해가 기울기 시작하자, 사막은 전혀 다른 얼굴을 보여주었다. 한낮의 사막이 가차 없이 뜨겁고 하얗게 빛났다면, 해 질 무렵의 사막은 부드럽고 따뜻한 색으로 물들었다. 마른 땅은 황금빛으로 빛났고, 바위들은 주황과 분홍으로 발그레해졌다. 조슈아트리들의 그림자가 땅 위로 길게 드리웠다. 빛이 비스듬해질수록 사막의 모든 굴곡이 더 또렷하게 드러났다.

나는 한 바위 언덕에 올라 그 풍경을 바라보았다. 바람조차 숨을 죽인 듯 고요했다. 들리는 것이라곤 이따금 스치는 바람 소리와, 멀리서 우는 새소리뿐이었다. 그 거대한 침묵 속에 앉아 있자니, 마음속의 소란까지 천천히 가라앉았다.

사막은 ‘아무것도 없는’ 땅이 아니었다. 사막에는 도시의 소음이 없었고, 분주함이 없었고, 끊임없이 무언가를 요구하는 자극이 없었다. 그 비움이 오히려 나를 채웠다. 우리는 늘 무언가로 삶을 가득 채우려 하지만, 정작 마음이 쉬는 건 이렇게 텅 빈 곳에서라는 걸, 나는 사막의 노을 앞에서 깨달았다.

밤, 별이 쏟아지는 하늘 아래

그리고 사막의 진짜 선물은, 해가 완전히 진 뒤에 찾아왔다. 어둠이 내리자, 하늘에 별이 돋기 시작했다. 처음엔 몇 개였다가, 점점 더 많아졌다. 도시의 불빛이 닿지 않는 이 사막에서, 하늘은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별들로 가득 찼다. 별이 그저 점점이 박힌 정도가 아니었다. 별과 별 사이가 또 다른 희미한 별빛으로 메워져, 하늘 전체가 은은하게 빛났다. 은하수가 거대한 강처럼 하늘을 가로질러 흘렀다.

나는 차의 보닛에 등을 기대고 누워, 그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도시에서 살아온 오랜 세월 동안, 나는 이런 하늘이 여전히 존재한다는 사실을 잊고 있었다. 별은 늘 그 자리에 있었다. 다만 도시의 불빛이 너무 밝아서, 우리가 보지 못했을 뿐이었다.

그 별빛 아래 누워, 나는 오래도록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수천 년 전 이 사막을 지나던 사람들도 똑같은 별을 올려다보았을 것이다. 길을 잃은 여행자도, 약속의 땅을 찾던 개척자도, 그리고 오늘 밤의 나도. 사막의 밤하늘은 시간을 넘어 모두를 같은 자리에 데려다 놓았다. 그 까마득한 별빛 아래에서, 하루의 근심이며 삶의 조바심 같은 것들이 한없이 작고 가볍게 느껴졌다.

조피디의 시선

사막은 나에게 ‘비움’에 대해 가르쳐주었다. 우리는 흔히 가득 찬 것을 풍요라 여기고, 텅 빈 것을 결핍이라 여긴다. 그러나 사막에서 나는 정반대를 경험했다. 아무것도 없기에 별이 보였고, 소음이 없기에 내 마음의 소리가 들렸으며, 채움을 멈추었기에 비로소 쉴 수 있었다. 조슈아트리가 혹독한 사막에서 살아남은 비결도 결국 그것이었다. 욕심내지 않고, 서두르지 않고, 가진 것만으로 천천히 살아가는 것. 사막의 침묵은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것 같았지만, 사실은 가장 깊은 말을 건네고 있었다. 때로는 비워야 채워진다고. 때로는 멈춰야 비로소 보인다고.

조피디의 추천 음악

별이 쏟아지는 사막의 밤하늘 아래 누워, 나는 이 노래를 떠올렸다. 끝없이 펼쳐진 사막의 고독과, 그 고독 속에서 오히려 선명해지는 자유. 그 두 가지가 노래 안에 함께 담겨 있었다.

America — 「A Horse with No Name」

“I’ve been through the desert on a horse with no name / It felt good to be out of the rain.”

(이름 없는 말을 타고 사막을 건넜네 / 비를 벗어나니 마음이 편안했네.)


Chapter 06

요세미티, 거인들 앞에 서다

사막에서 비움을 배운 나는, 이번엔 정반대의 풍경을 향해 떠났다. 거대한 화강암 절벽과 하늘에서 쏟아지는 폭포, 수천 년을 살아온 나무들이 있는 곳. 요세미티. 사람들이 그 이름 앞에서 왜 그토록 작은 목소리가 되는지, 나는 직접 가서 알고 싶었다.

요세미티로 향하는 길은 길고 한적했다. 캘리포니아의 내륙을 가로질러 시에라네바다산맥으로 들어서자, 풍경이 점점 깊어졌다. 평원이 사라지고 언덕이 솟았고, 언덕은 다시 산이 되었다. 길은 울창한 침엽수림 사이로 구불구불 이어졌다. 창문을 열자 서늘하고 청량한 공기가 밀려들었다. 도시에서 멀어질수록, 공기는 더 맑아지고 침묵은 더 깊어졌다.

새벽, 터널 뷰에서 마주한 첫 장면

요세미티 밸리로 들어서기 직전, 긴 터널을 하나 지난다. 그 터널을 빠져나오는 순간, 사람들은 약속이나 한 듯 차를 세운다. 터널 뷰(Tunnel View)였다. 차에서 내려 그 앞에 선 순간, 나는 숨을 멈췄다.

눈앞에 요세미티 밸리 전체가 한 폭의 그림처럼 펼쳐져 있었다. 왼쪽으로는 깎아지른 거대한 화강암 절벽 엘 캐피탄(El Capitan)이 수직으로 솟아 있었고, 오른쪽으로는 가느다란 물줄기의 브라이들베일 폭포(Bridalveil Fall)가 절벽 아래로 떨어지고 있었다. 그리고 그 모든 풍경의 한가운데, 멀리 하프 돔(Half Dome)이 마치 누군가 반으로 잘라낸 듯한 모습으로 우뚝 서 있었다.

새벽의 옅은 안개가 골짜기 아래에 낮게 깔려 있었고, 막 떠오른 햇살이 절벽의 윗부분을 황금빛으로 물들이고 있었다. 골짜기는 아직 푸른 그늘 속에 잠겨 있었고, 봉우리만이 빛을 받아 깨어나는 중이었다. 그 광경 앞에서 사람들은 모두 말이 없었다. 사진을 찍는 사람도, 그저 바라보는 사람도, 누구 하나 큰 소리를 내지 않았다. 거대한 자연 앞에서 인간의 목소리는 저절로 작아지는 법이었다.

이 풍경은 한 사람의 사진가를 떠올리게 했다. 앤설 애덤스. 그는 평생 요세미티의 흑백 사진을 찍으며, 이 골짜기의 빛과 그림자를 예술로 남긴 사람이었다. 그의 사진 속에서만 보던 풍경 앞에 직접 서 있다는 것이, 그 새벽엔 도무지 실감이 나지 않았다.

한낮, 엘 캐피탄 아래에서

밸리 안으로 차를 몰고 들어가, 나는 엘 캐피탄 바로 아래에 섰다. 고개를 끝까지 젖혀야 그 꼭대기가 겨우 보였다. 거의 1킬로미터에 가까운 수직의 화강암 벽. 그 거대함은 사진으로는 결코 전해지지 않는 것이었다. 인간이 이 앞에 서면, 스스로가 얼마나 작은 존재인지를 온몸으로 느끼게 된다.

놀라운 건, 그 까마득한 절벽에 작은 점들이 매달려 있다는 사실이었다. 클라이머들이었다. 맨손과 밧줄에 의지해, 그 수직의 벽을 며칠에 걸쳐 기어오르는 사람들. 그들은 절벽에 매달린 채 잠을 자고, 다시 오르기를 반복한다고 했다. 망원경 없이는 보이지도 않을 만큼 작은 그 점들을 올려다보며, 나는 인간이라는 존재가 참 모순적이라고 생각했다. 자연 앞에서 한없이 작아지면서도, 동시에 그 거대함에 끝내 도전하는 존재. 두려움과 동경은 결국 한 뿌리에서 자라는 감정인지도 몰랐다.

엘 캐피탄을 지나 머세드강(Merced River)을 따라 걸었다. 강물은 맑고 차가웠고, 수면 위로 절벽과 하늘과 나무가 거울처럼 비쳤다. 초원에는 사슴이 고개를 숙인 채 풀을 뜯고 있었고, 사람들은 강가에 앉아 그 평화로운 풍경을 바라보았다. 거대한 절벽이 주는 압도감과, 강가의 잔잔한 평온이 한 골짜기 안에 공존하고 있었다.

오후, 폭포 앞에서

요세미티의 또 다른 주인공은 폭포였다. 나는 요세미티 폭포(Yosemite Falls)를 향해 걸었다. 가까이 다가갈수록 물소리가 점점 커졌다. 북아메리카에서 손꼽히는 높이를 자랑하는 이 폭포는, 절벽 위에서 떨어진 물이 바닥에 닿기까지 아득한 거리를 낙하했다. 폭포 아래에 서자, 떨어지는 물이 만들어낸 물보라가 바람을 타고 얼굴까지 날아왔다. 차갑고 상쾌했다.

봄과 초여름이면 시에라네바다의 눈이 녹아내려 폭포는 가장 우렁차게 쏟아진다고 했다. 절벽을 타고 떨어지는 그 거대한 물줄기는, 마치 산이 살아서 숨을 쉬는 것 같았다. 물은 끊임없이 떨어졌다. 수천 년, 수만 년 동안 한순간도 멈추지 않고. 그 앞에 서 있으면, 시간이라는 것의 크기가 어렴풋이 느껴졌다. 인간의 한 생애란 이 폭포가 흘려보낸 물의 한 방울에도 미치지 못할 것이었다. 그런데도 그 작은 한 생애로, 우리는 이렇게 거대한 풍경 앞에 서서 감동할 수 있었다. 그것이 인간에게 주어진 작지만 귀한 능력 같았다.

해 질 무렵, 글레이셔 포인트의 빛

오후의 해가 길어질 무렵, 나는 밸리를 벗어나 구불구불한 산길을 한참 올라갔다. 글레이셔 포인트(Glacier Point)였다. 밸리 바닥에서 올려다보던 풍경을, 이번에는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게 되었다. 글레이셔 포인트의 난간에 서자, 요세미티 밸리 전체가 발아래로 아득히 펼쳐졌다. 낮에 그 아래에 서서 올려다보았던 하프 돔이, 이제는 눈높이에서 마주 보였다. 골짜기를 흐르는 머세드강은 가느다란 은빛 실처럼 보였고, 폭포들은 절벽에 그어진 하얀 선처럼 걸려 있었다.

해가 서쪽으로 기울자, 하프 돔의 화강암 표면이 물들기 시작했다. 회색이었던 바위가 옅은 노랑으로, 다시 따뜻한 주황으로, 마침내 발그레한 분홍빛으로 변해갔다. 그 색의 변화는 너무나 느리고 장엄해서, 마치 거대한 바위가 천천히 숨을 쉬는 것 같았다. 사람들은 난간에 기대어 그 광경을 말없이 지켜보았다. 누군가는 사진을 찍었고, 누군가는 그저 바라보았고, 누군가는 조용히 눈물을 훔쳤다. 자연이 만들어내는 이 거대한 빛의 연주 앞에서, 우리는 모두 같은 관객이었다.

밤, 별과 침묵 속에서

어둠이 깊어지자, 요세미티의 하늘에도 별이 돋았다. 사막의 밤하늘이 끝없이 넓게 펼쳐진 별의 바다였다면, 요세미티의 밤하늘은 거대한 절벽들이 액자처럼 둘러싼 별의 정원이었다. 검은 실루엣으로 솟은 화강암 봉우리들 사이로, 별들이 촘촘히 박혀 빛났다. 골짜기는 깊은 침묵에 잠겼고, 들리는 것이라곤 멀리서 들려오는 폭포 소리와 바람에 흔들리는 침엽수의 속삭임뿐이었다.

나는 고개를 들어 그 하늘을 오래도록 바라보았다. 발아래의 거대한 절벽도, 머리 위의 무수한 별도, 모두 인간의 시간을 까마득히 넘어선 것들이었다. 엘 캐피탄의 화강암은 수억 년에 걸쳐 빚어졌고, 머리 위의 별빛은 수천 년을 날아온 끝에 지금 내 눈에 닿고 있었다. 그 사이에 선 나의 하루는, 찰나 중의 찰나였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사실이 나를 쓸쓸하게 만들지 않았다. 오히려 마음이 편안해졌다. 이 거대한 시간과 공간 속에서 내 존재가 한없이 작다는 것은, 곧 내가 짊어진 근심들도 그만큼 작다는 뜻이었다. 거인들 앞에 서는 일은, 나를 초라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가볍게 만들어주었다.

조피디의 시선

요세미티는 나에게 ‘겸손’을 가르쳐주었다. 도시에서 우리는 인간이 만든 것들에 둘러싸여 산다. 우리가 세운 건물, 우리가 깐 도로, 우리가 만든 일정과 규칙들. 그 안에서 우리는 자신도 모르게 인간을 세상의 중심에 놓는다. 그러나 1킬로미터의 화강암 절벽 앞에서, 수만 년을 멈추지 않은 폭포 앞에서, 그 오만은 조용히 무너진다. 우리는 이 거대한 자연의 주인이 아니라, 잠시 이곳을 지나가는 손님일 뿐이다. 그러나 그 깨달음은 슬프지 않았다. 손님이기에 우리는 이 풍경에 감탄할 수 있고, 잠시 머물다 떠나기에 이 순간이 더없이 귀하게 느껴졌다. 거인들 앞에 서는 일은, 결국 나 자신의 크기를 바르게 아는 일이었다.

조피디의 추천 음악

별이 박힌 요세미티의 밤하늘과 검은 절벽들을 바라보며, 나는 이 곡을 떠올렸다. 위대한 자연 앞에 선 인간의 경외감을, 이보다 더 잘 표현한 노래를 나는 알지 못한다.

Louis Armstrong — 「What a Wonderful World」

“I see trees of green, red roses too / I see them bloom for me and you.”

(푸른 나무들이 보이네, 붉은 장미들도 / 그것들이 나와 너를 위해 피어나는 것을 보네.)


Chapter 07

나파밸리, 천천히 익어가는 시간

도시와 해안, 사막과 거대한 자연을 지나온 나의 캘리포니아 여정은, 마지막으로 한 골짜기에 닿았다. 포도밭이 끝없이 펼쳐진 곳, 시간이 가장 느리게 흐르는 땅. 나파밸리. 이곳에서 나는 서두름을 완전히 내려놓기로 했다.

샌프란시스코에서 북쪽으로 한 시간 남짓 달리면, 풍경이 천천히 부드러워진다. 도시의 긴장이 풀리고, 완만한 언덕이 나타나고, 이윽고 길 양옆으로 끝없는 포도밭이 펼쳐진다. 가지런히 줄지어 선 포도 덩굴들이 언덕의 굴곡을 따라 물결처럼 흘렀다. 햇살은 따뜻했고, 공기에서는 흙냄새와 잘 익은 과일 냄새가 났다. 나파밸리였다.

한낮, 첫 번째 와이너리에서

나파밸리에는 수백 개의 와이너리가 있다. 거대한 성처럼 지어진 곳도, 소박한 농가 같은 곳도 있었다. 나는 욕심을 부리지 않기로 했다. 많은 곳을 바쁘게 도는 대신, 한 곳에 천천히 머물기로 했다.

와이너리는 언덕 위에 자리하고 있었다. 안내를 받아 포도밭 사이를 걸었다. 가까이서 본 포도 덩굴은 생각보다 거칠고 단단했다. 비틀린 줄기, 마른 가지. 그러나 그 투박한 덩굴에 보랏빛 포도송이가 탐스럽게 매달려 있었다.

안내인의 설명이 인상 깊었다. 좋은 와인은 오히려 척박한 땅에서 나온다고 했다. 물과 양분이 너무 풍부하면 포도나무는 잎과 줄기만 무성하게 키운다. 그러나 땅이 메마르고 환경이 혹독하면, 나무는 살아남기 위해 뿌리를 땅속 깊이 내리고, 그 모든 힘을 열매에 집중시킨다. 고생을 견딘 포도가 더 깊은 맛을 낸다는 것이다. 혹독함을 견딘 생명이 더 단단해진다는 것 — 캘리포니아의 땅은 이 골짜기에서도 같은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었다

지하 저장고로 내려갔다. 서늘하고 어두운 그곳에는 오크통이 끝없이 줄지어 누워 있었다. 이 통 안에서 와인은 몇 년이고 조용히 익어간다고 했다.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는 어둠 속에서, 오직 시간만이 와인을 완성시키는 것이다. 서두른다고 더 빨리 익는 와인은 없었다. 좋은 와인을 만드는 마지막 재료는, 결국 기다림이었다.

오후, 한 잔의 와인에 담긴 시간

시음실은 포도밭이 내려다보이는 테라스에 있었다. 잔에 와인이 따라졌다. 안내인은 서두르지 말라고 했다. 먼저 빛에 비추어 색을 보고, 잔을 천천히 돌려 향을 맡고, 그다음에야 한 모금 머금으라고. 나는 그 말대로 했다. 잔을 흔들자 와인이 잔 벽을 타고 천천히 흘러내렸고, 그 안에서 과일과 흙, 나무의 향이 차례로 피어올랐다. 한 모금을 머금자, 처음엔 진한 과일 맛이, 뒤이어 부드러운 떫은맛이, 마지막엔 은은한 여운이 입안에 오래 남았다.

한 잔의 와인 안에는 긴 시간이 담겨 있었다. 포도나무가 척박한 땅에서 견딘 계절들, 뜨거운 햇볕과 서늘한 밤, 수확하는 사람들의 손길, 그리고 어두운 저장고에서 보낸 몇 년의 침묵. 그 모든 시간이 응축되어 이 한 잔이 된 것이다. 와인을 마신다는 건, 어쩌면 시간을 마시는 일인지도 몰랐다.

테라스에 앉아 포도밭을 바라보았다. 오후의 햇살이 포도밭 위로 길고 따뜻하게 내려앉았다. 옆 테이블의 사람들은 잔을 들고 낮은 목소리로 이야기를 나누었고, 아무도 시계를 보지 않았다. 나파밸리에서는 시간이 쫓아오지 않았다. 시간은 그저 와인처럼, 천천히 익어가고 있을 뿐이었다.

저녁, 식탁 위의 마무리

해가 기울 무렵, 나는 와이너리에 딸린 작은 레스토랑에 자리를 잡았다. 나파밸리는 와인의 땅인 동시에, 미식의 땅이기도 했다. 이 골짜기의 비옥한 땅에서 자란 신선한 채소, 근처 농장의 치즈, 갓 구운 빵. 식탁에 오른 음식들은 모두 이 땅에서 가까운 곳에서 온 것들이었다. 요리는 화려하지 않았다. 그러나 재료 하나하나의 맛이 정직하게 살아 있었다.

낮에 맛본 와인 한 잔을 곁들였다. 음식과 와인이 입안에서 어우러지자, 각자일 때보다 더 깊은 맛이 났다. 좋은 음식과 좋은 와인, 그리고 천천히 흐르는 저녁 시간. 그 단순한 조합이 만들어내는 충만함을, 나는 오래 음미했다.

창밖으로 포도밭에 노을이 내렸다. 가지런한 포도 덩굴들이 황금빛으로 물들었다가, 천천히 보랏빛 어둠 속으로 잠겼다. 식탁의 촛불이 켜졌고, 사람들의 나직한 대화와 잔이 부딪치는 맑은 소리가 공기를 채웠다. 서두를 일이 없는 저녁이었다. 나는 잔을 천천히 비우며, 이 골짜기가 건네는 느린 시간에 가만히 몸을 맡겼다.

조피디의 시선

나파밸리는 나에게 ‘기다림’에 대해 가르쳐주었다. 우리는 흔히 좋은 결과를 빨리 손에 쥐고 싶어 한다. 그러나 이 골짜기의 와인은, 좋은 것은 결코 서둘러 만들어지지 않는다고 조용히 일러주었다. 척박한 땅에서 견딘 포도, 어두운 저장고에서 보낸 몇 년의 침묵, 그리고 잔을 천천히 돌리며 향을 맡는 그 잠깐의 여유까지 — 좋은 와인 한 잔에는 서두르지 않은 모든 시간이 담겨 있었다. 어쩌면 삶도 그러할 것이다. 지금 더디게 익어가는 것처럼 보여도, 어두운 곳에서 묵묵히 흐른 시간은 언젠가 깊은 맛으로 돌아온다. 나파밸리의 저녁은 나에게 말해주었다. 서두르지 않아도 좋다고. 좋은 것은 언제나 시간이 만든다고.

조피디의 추천 음악

포도밭에 노을이 내리는 나파밸리의 저녁 식탁에서, 나는 이 노래를 떠올렸다. 천천히 흐르는 시간 속에서, 삶이 더없이 따뜻하고 충만하게 느껴지는 순간이 그 멜로디 안에 담겨 있었다.

Louis Armstrong — 「La Vie en Rose」

“Give your heart and soul to me / And life will always be la vie en rose.”

(그대의 마음과 영혼을 내게 주오 / 그러면 삶은 언제나 장밋빛이리니.)


에필로그

천천히 가도 좋다

캘리포니아의 다섯 얼굴을 모두 만나고 나서야, 나는 이 여정이 처음부터 한 방향을 가리키고 있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천사의 도시 로스앤젤레스와 안개의 도시 샌프란시스코는, 같은 땅이 이토록 다른 표정을 지을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햇빛 속에서 어깨의 힘을 빼는 법과, 안개 속에서 가만히 안을 들여다보는 법. 두 도시는 한 사람의 마음속에 함께 살아가는 두 개의 결 같았다.

1번 국도의 해안은, 목적지보다 길 위의 머무름이 더 소중하다고 일러주었다. 빠르게 달리면 절벽도 바다도 그저 스쳐 지나가는 배경일 뿐이지만, 자주 멈춰 서서 숨을 고를 때 비로소 그 풍경은 마음 안으로 걸어 들어왔다.

사막은 비움이 곧 채움이 될 수 있다는 역설을 가르쳤다. 아무것도 없기에 별이 보였고, 소음이 없기에 내 마음의 소리가 들렸다. 요세미티의 거대한 절벽은, 내 존재의 크기를 바르게 아는 겸손을 알려주었다. 거인들 앞에 서는 일은 나를 초라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가볍게 만들어주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나파밸리는, 좋은 것은 결코 서둘러 만들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 기다림이야말로 완성의 마지막 재료라는 것을 가르쳐주었다.

생각해보면 이 다섯 개의 가르침은 결국 하나로 이어져 있었다. 천천히 가도 괜찮다는 것. 멈춰 서도 괜찮다는 것. 비우고, 기다리고, 자신의 크기를 알고, 길 위의 순간순간에 머무르라는 것. 빠르게 달려온 한 사람에게 캘리포니아라는 땅이 사철 내내 관대한 햇빛으로 건넨 말은, 어쩌면 처음부터 그 한마디였는지도 모른다. 이제 천천히 가도 된다.

나는 평생 삶의 무대를 옮기며 살아왔다. 한국에서 뉴욕으로, 다시 뉴욕에서 캘리포니아로. 그때마다 두려웠고, 그때마다 설레었다. 무대를 옮긴다는 것은 늘 더 빨리, 더 멀리 가기 위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캘리포니아에 와서야 알게 되었다. 때로는 더 천천히 가기 위해, 더 깊이 머무르기 위해 우리는 자리를 옮긴다는 것을. 캘리포니아는 나에게 새로운 도시가 아니라, 새로운 속도였다.

이 책에 담은 다섯 개의 얼굴은 모두 그 한 가지 속도를 가리키고 있었다. 천천히, 그러나 깊이. 와인이 어두운 저장고에서 묵묵히 익어가듯, 우리의 삶도 그렇게 익어갈 것이다. 지금 더디게 흘러가는 것처럼 보여도, 보이지 않는 곳에서 흐른 시간은 언젠가 깊은 맛으로 돌아온다.

뉴욕이 나에게 ‘버티는 법’을 가르쳤다면, 캘리포니아는 ‘풀어놓는 법’을 가르쳐주었다. 두 도시 모두, 그 시절의 나에게 꼭 필요한 스승이었다. 그리고 나는 안다. 이 여정이 여기서 끝이 아니라는 것을. 길은 언제나 다음 모퉁이로 이어지고, 또 다른 땅이 또 다른 얼굴로 나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잠시 이 캘리포니아의 햇빛 아래 머무르려 한다. 서두르지 않고, 천천히. 좋은 것은 언제나 시간이 만든다는 걸, 이제는 알기 때문이다.

이 책을 덮는 당신에게도, 그 햇빛 한 줌이 가닿기를 바란다.

— 캘리포니아의 어느 맑은 날, 조선웅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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